수행의 세계북창(北窓) 정염(鄭嶫) 선생 이야기

북창(北窓) 정염(鄭嶫) 선생

 

 

선생의 자는 사결(士潔)이시고, 호는 북창(北窓)이시며 중종 때 분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많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산속의 절에서 선가(禪家)의 육통법을 시험하려고 삼일 동안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물을 보니, 산 너머 일 백리 밖의 일까지도 보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천문, 지리, 의약, 복서(점술), 율려, 산수, 중국어 및 기타 외국어 등을 모두 배워서 스스로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비록 천리 밖의 일을 생각지 않다가도 생각만 하면 곧 알아내었다.

 

훗날 중국에 들어가 봉천전(奉天殿)에서 도사를 만났는데, 도사가 묻기를

 

 

" 귀국에도 도사가 있습니까? " 하므로 선생께서 거짓으로 대답하기를

 

" 우리 나라에는 삼신산(三神山)이 있어 한낮에도 신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항상 볼 수 있으니, 무엇이 그리 귀할 게 있겠소?" 라고 하였다. 그러자 도사가 크게 놀라 

 

" 어찌 그럴 수가 있소?" 하고 묻자 선생은 즉시 [황정경], [참동계], [도덕경], [음부경]등의 도경을 들어, 신선이 되는 길을 밝게 설명하니, 도사는 굽실거리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였다.

 

유구(琉逑)에서 온 사신 또한 이인이었는데, 그는 자기 나라에서 역수로 미리 헤아려보니 중국에 들어가면 진인을 만날 것을 알고 길을 따라 물어가며 북경에 도착해서 여러 나라 사신이 머물고 있는 관저를 두루 찾아봤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선생을 만나게 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기도 모르게 절을 하고 지니고 있던 행낭에서 조그마한 책자를 꺼내는데, 거기에는 모년 모월 모일에 중국에 들어가면 진인을 만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을 선생에게 보이면서

 

" 이른바 진인은 선생이 아니시면 누구겠소?" 하고 역학을 배우기를 요청했다. 

선생은 곧 유구어로 주역을 가르쳤다. 이에 관저 안에 있던 여러 나라의 사신들이 그 얘기를 듣고 다투어 와서 그 장면을 구경하였다. 선생은 각각 그 나라 말로 척척 응답하니, 모두 깜짝 놀라며 천인(天人)이라고 칭찬하였다. 어떤 이가 선생에게 묻기를

 

" 세상에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를 해득하는 사람이 있으니, 다른 나라의 말은 곧 새나 짐승의 소리와 같습니다. 그 말을 해득하는 것은 간혹 있을 수 있는 일이겠으나, 그 말을 입으로 하는 것은 또한 다르지 않습니까? " 하였다. 선생께서 대답하시기를, " 난 듣고서 해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은 지 오래 되었소."하였다.

 

선생은 삼교(三敎)를 관통하였으나, 근본을 성학(聖學)에 돌려, 그의 유훈(遺訓)도 효제(孝悌)를 남겨 오로지 효제에 힘쓰게 하였고, [소학], [근사록]을 초학자의 지름길로 삼았다.

 

일찍이 선생께서는 말씀하시기를, " 성학은 인륜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긴오하고 오묘한 곳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불(仙佛)은 오로지 마음을 닦고 본성을 깨달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높이 도달한 곳은 많고 낮고 쉬운 것을 배움은 전혀 없다. 이것은 삼교가 다른 까닭이고, 선불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선생은 성질이 육식을 좋아하지 않았고, 술은 잘 마셔 두세 말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또 휘파람을 잘 불었다. 일찍이 금강산 꼭대기에 올라가 소리를 내니, 그 소리가 바위와 골짜기를 진동시켰다. 산 속의 중들은 놀라 피리소리로 여겼으나, 후에 알고보니 선생이 휘파람을 분 것이었다.

 

조정에서 선생이 천문, 의약, 율려에 통달했다 하여 장악원(掌樂院) 주부(主簿) 관상감(觀象監), 혜민서(慧敏署)의 교수로 임명하였고, 나와서는 포천현감(抱川縣監)이 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양주 괘라리(掛蘿里)에 은거하였다는데, 깊숙이 숨어 세상과는 발을 끊고 연단화후법(煉丹火候法)을 수련하였다.

 

선생이 하루는 자신에 대한 만가를 지었다.

 

 

一生讀破萬卷書, 일생 동안 만 권의 책을 독파하고 

一日飮盡天鍾酒. 하루에 천 잔 술을 마시었네. 

高談伏羲以上事, 복희씨(伏羲氏) 이전 일을 고고하게 담론하고 

俗說往來不掛口. 속설은 입에도 담지 않았네. 

顔子三十稱亞聖, 안자(顔子)는 삼십을 살아도 아성(亞聖)이라 불리었는데, 

先生之壽何其久. 선생의 나이는 어찌 그리 길더뇨?

 

그리고서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나니 선생의 나이는 사십사세였다. 세상에서는 선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할 줄 알았고, 또 대낮에도 그림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우 정작의 호는 고옥(古玉)으로 역시 이인이었다. 형을 따라 수련의 배움을 터득했다.

 

선생의 사십사세 죽음에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선생의 친구중 한 사람이 선생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 내가 사십사세가 되는 모월 모일 죽는다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겠는가?"

 

하고 묻자 선생이 되묻기를

 

" 그렇게 죽고 싶지 않는가?" 하자 친구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선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씀하시길

 

" 그러면 모월 모일 어느 마을 어느 곳에 가면 수레를 끄는 노인이 한 분 계실것이네, 자네는 아무 이유도 묻지 말고 그냥 그 노인에게 절을 하게나. "

 

이 말을 들은 친구가 모월 모일 그 장소에 가니 마침 수레를 끄는 노인이 보이길래 보자마자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인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줄곧 따라다니며 절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을밖을 벗어나자 노인이 뒤를 돌아보며 그 친구를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 북창이 보내서 왔군." 한마디 하시곤 그냥 가셨다.

 

그 후 그 친구는 사십사세를 넘기고도 건강히 살았지만, 북창선생은 사십사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북창선생이 친구분과 수명을 바꾸었다고들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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