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끝나지 않은 전쟁④]고조선 국경선, 패수의 위치는 어디인가

 

[한국 고대사, 끝나지 않은 전쟁④]고조선 국경선, 패수의 위치는 어디인가

 

압록강·청천강·대동강 등 한반도說은 어불성설 

 

황순종 (고대사 연구가) 

 

고조선은 서기전 24세기에 건국되어 동아시아의 선진대국으로 2000년을 존속해 왔으며 중국의 성장·발전에 따라 서기전 2세기에는 패수라는 강을 경계로 하여 중국의 한(漢)나라 초기 제후국인 연(燕)나라와 이웃하게 되었다. 당시 연나라의 위만이 경계인 패수를 건너 고조선의 서쪽 변경에 망명해 왔다가 반란을 일으켜 위만조선을 세웠는데, 이 위만의 조선에 대해 기록한 역사서가 사마천의 ‘사기’ 중 ‘조선열전’이다. 이 ‘조선열전’을 통해 패수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학계에서 패수를 압록강이나 청천강 등 한반도의 강이라는 주장이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조선열전’에는 중국 연나라의 위만이 ‘동쪽’으로 경계인 패수를 건너 고조선에 망명했다고 기록했다. 만약 패수가 일제 식민사학자나 지금 학계의 주장처럼 압록강이나 청천강·대동강 등 한반도의 강이었다면 그 강들이 동에서 서로 흐르므로, 위만이 ‘남쪽’으로 건넜다고 해야 평양에 이를 수 있다. 또 위만이 조선에 와서 도읍했다는 왕험성(평양)의 위치에 대해 ‘사기’의 주석서를 보면 신찬이라는 학자가 패수의 ‘동쪽’이라 했으므로 역시 위만이 동쪽의 조선으로 왔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리고 다른 학자들은 왕험성이 요동군이나 창려군의 험독현이라고 주석했으므로 그곳이 만주였음을 알 수 있으며, 왕험성이 지금의 평양이었다는 학계의 주장이 조선총독부의 식민사관을 추종한 잘못임을 확인하게 된다.

 

한편 한(漢) 무제가 서기전 109년 위만조선의 우거왕을 칠 때 수군대장 양복이 ‘제(齊)나라를 따라 발해에 떠서(從齊浮渤海)’ 열구라는 곳에 상륙작전을 폈다. 이에 따르면 지금 중국 산동성 해안을 따라 안 쪽의 발해만으로 들어가 톈진 부근에 상륙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병도는 일제 강점기에 쓴 ‘패수고’에서 이 구절의 ‘발해’ 다음에 괄호 속에 ‘황해’라고 써넣어 사료를 조작했다. 발해와 황해는 누구나 아는 대로 별개의 바다인데 같은 바다로 만들어, 양복이 황해를 건너 대동강 입구의 열구(列口)로 왔다는 것이다. 대동강이 열수(列水)라는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설을 추종하여 그 입구인 대동강 하구가 열구라는 허위 주장을 한 것이다.

 

이 열수의 북쪽에는 또 열양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산해경’을 보면 이 열양이 중국 연나라의 땅이라 했으며 그 동쪽에 조선이 있다고 했다. 즉 연나라의 위만이 ‘동쪽’으로 조선에 왔다는 ‘사기’의 ‘조선열전’ 기록처럼, 이 기록도 역시 연의 ‘동쪽’이 조선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병도의 주장처럼 열수가 지금의 대동강이라면 그 북쪽의 열양은 연나라가 되는데, 그곳은 평양과 거의 같은 곳으로 또 조선이 되어야 하므로 모순이 된다. 그러므로 연나라의 열양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으며, 그 동쪽의 조선 또한 한반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패수나 열수가 한반도의 강이라는 주장은 모순투성이로 성립할 수 없음을 논했다. 패수에 대한 기본 사료인 ‘사기’의 ‘조선열전’에는 앞에서 보듯 그 위치를 보하이(발해·渤海) 연안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이를 더욱 확실하게 증거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료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한서’의 ‘지리지’ 중 ‘ 낙랑군’ 조를 보면 25개 속현의 이름과 각 현에 대한 간략한 기술이 있으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어렵다. 게다가 낙랑군을 흐르는 패수·대수·열수가 서쪽으로 흐른다고 되어 있어 이 강들이 한반도의 강인 것처럼 조작했다. 이 강들이 한반도에 있을 수 없음은 이미 밝혔다. 

 

그런데 ‘한서’의 ‘지리지’에 동북쪽의 유주(幽州)와 북쪽의 병주(幷州)에 속한 15개 군들을 보면 군 안에 도위를 따로 두어 군의 일부를 다스리게 했다. 그중 낙랑군을 제외한 8군은 모두 동부·서부의 두 도위를 두었으나 유독 낙랑군에는 동부와 남부도위의 둘을 두었다. 15개 군 중 낙랑에만 남부도위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군의 관할 지역이 특수하게 ‘「’ 형태여서 동부와 남부에 보조할 도위를 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낙랑군은 바닷가에 있었으므로 이 형태가 나올 수 있는 곳을 찾자면 톈진을 둘러싼 보하이의 서(북)안 지역 외에는 없다. 한반도에서라면 함경남도 해안에 있을 수 있으나 서해안에서는 이런 형태가 나올 수 없으니, 낙랑이 평안도라는 설은 틀린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검토해야 할 자료는 ‘수경’ 권13의 누수인데, 습수라고도 하는 이 강은 지금의 융딩허(영정하·永定河)로서 베이징을 지나 톈진으로 흘러 바다(보하이)로 들어간다. 장안(張晏)은 이 습수와 그 지류인 습여수(선수) 그리고 열수(고하)의 세 강이 합하여 흐르는 곳이 낙랑군 조선현이라고 했다. 패수 역시 낙랑군을 흐르는데 ‘수경’에는 “패수가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다. 이 기록에 맞는 강을 찾자면 차오바이신허(조백신하·潮白新河)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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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강은 낙랑 누방현에서 발원하는 것은 아니고 차오바이허(조백하·潮白河)의 하류의 흐름에 새로운 다른 강줄기를 만들어 붙인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강은 거슬러 올라가면 차오바이허이며 또 거슬러 올라가면 상류는 바이허가 된다. 그리고 바이허 상류로부터 차오바이허를 거쳐 옛 물길로 흐르는 전체의 강은 하이허(해하·海河) 또는 구허(고하·沽河)로, 결국 패수는 위의 열수와 같은 강이다. 이와 같이 낙랑은 텐진 해안이고 요동은 그 서북 쪽의 베이징 부근이었다. 한나라의 요동·현도가 베이징 부근임을 ‘수경’이 위와 같이 충분히 증거하고 있는데도 학계에서는 계속 외면한다. 국민 모두가 이런 매국적 사학계의 속임수를 알아야 한다

 

▲황순종 고대사 연구가 

 

서울대학교 및 미국 디트로이트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고대 문헌과 사류를 중심으로 철저한 고증을 추구하며 저술한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 고대사’(2012)와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2014) 등을 쓴 역사 저술가이다. 조선총독부에서 한국을 영구 지배하기 위해 만든 식민사관을 바로잡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걸고 있다. 

 

황순종 고대사 연구가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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