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와 ‘잇다’ - 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중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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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한'의 존재론

 

 

어떤 사상이 철학으로 정립되려면 세 가지 근원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존재론과 인식론, 가치론이 그것이다. 

 

철학의 골격을 이루는 이 세 가지 요소 중 존재론은 오랜 옛날부터 있었고 

인식론은 근대에, 

가치론은 현대에 

이르러 활발해졌다. ‘한’ 사상 역시 철학으로 정립되려면 위의 세 가지 명제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한사상의 존재론에 대한 학자들의 논증들을 정리해 본다. 

 

‘한’을 우주만상의 근본적인 실체로 보았다. 

한없이 크고 깊고 넓기 때문에 사람을 비롯한 그 밖의 모든 만물을 포괄하며 또한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한에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다. 또한 한은 처음도 끝도 없는 존재이고 인간의 오관으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신비적 존재이다.

 

하늘도 땅도 형성되기 이전에 그 모양을 알 수 없는 근원이 있어서 그것이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긴 것이 ‘한’이다. 따라서 모든 만물의 원천이요 근본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많다. 

그중 민족경전인 천부경의 시작이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요, 끝이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다. 

 

일(一)이 처음도 끝도 없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이 일(一)은 앞에서 본 ‘한’을 의미하며 존재론상 무한의 크기에서 오는 신비적 존재이므로 말과 글로 표현되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있음도 없음도 결국 ‘한’ 안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물의 근본적인 실재이다.

  
단군철학석의(檀君哲學釋義)에도 ‘한’의 기록이 있다. 

 

한(一)은 돌고 돌아서 그치지 않는다. 

또 그것은 너무 커서 밖이 없고 너무 미세하여 안이 없고 또 처음이 없어서 앞이 없고 끝이 없어서 뒤가 없다. 

이렇게 넓고 큰 한은 모든 만물의 근본적인 실재가 된다. 

중국의 노자도 도덕경에서 도가 하나를 낳아 천지만물의 시원(始原)임을 주장했다. 

노자의 일(一)과 우리의 한은 무한성, 신비성을 가지고 만물의 근본적인 실체가 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한의 존재론은 양적 의미로 ‘일원론’이다. 

우주의 근본적인 실재는 오직 하나인 한에 있다. 바다에서 생기는 파도는 여러 가지 모양이지만 그 근본은 물인 것과 같다. 

모든 개체는 ‘한’의 여러 가지 다른 양상이다.
  
한의 존재론은 질적 의미에서도 큰 하나로 본다. 

서양철학의 존재론인 유물론과 유신론을 모두 포괄한다. 

서양철학이 정신과 물질을 두 개의 실체로 생각한다면 이 이원론의 밑바닥에 궁극적 실체로서의 ‘한’이 있다는 것이다. 

즉,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정신과 물질을 하나로 포괄하는 진정한 실체가 ‘한’이라는 설명이다. 

이 심오한 한이 둘로 나뉘어져 물질과 정신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위와 같이 서양철학의 유심론이나 유물론을 지양(止揚)한 근원적인 실재론을 주장한 것이 ‘한’철학의 입장이다.

 

따라서 한은 우주 사이에 홀로 있으며 항상 존재하며 또한 한은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또한 한에 관계되지 않는 물건은 하나도 없게 된다. 마치 태양이 온 누리에 만물을 편중 없이 비추는 것과 같다, 즉, 한은 독립성, 항존성, 보편성, 불멸성을 가진다.

  
서양철학의 존재론이 변함없이 ‘있음’을 추구하여 유(有)의 철학이었다면, 동양철학의 큰 흐름은 ‘없음’을 추구한 무(無)의 철학이었다. 특히 불교는 모든 존재는 연기되어 잇달아 일어나고 있으며 변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여 무(無)를 

강조했다. 서양 철학도 근대에 이르러 궤도를 수정한다. 

 

스피노자는 기독교의 유일신을 부정함으로서 파문을 당했지만 한평생 안경알을 닦으면서도 그의 철학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신은 티끌 속에도 있고 자연 속에 가득 차 있으며 이 상태는 스스로 발생하고 창조한다고 본 ‘범신론(汎神論)’을 주장했다. 신의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 원인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매우 혁신적이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서양철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패러다임을 바꾸게 했던 철학자가 화이트 헤드로 그의 과정철학은 불교의 연기설을 연상케 한다. 신과학의 양자 이론에 힘입어 실체란 말 대신 ‘과정’이란 용어를 쓰며 모든 존재는 상호 연관된 유기체임을 강조했다. ‘유(有)’의 철학에 머물면서 폐쇄적인 사고를 했던 서양철학의 존재론이 많이 완화되어 

동서양 철학의 절충된 양상을 보게 된다.
  
우리 언어에도 독특한 존재론적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말에 존재를 의미하는 낱말은 있다와 있음이다. 

있음은 이것이 저것에 ‘이어짐’에 있다. 즉, ‘있다’와 ‘잇다’는 어근이 같고 소리 값도 거의 비슷하다.
 
고대 한국인들은 존재의 구조를 이해할 때 어떤 존재이든 따로 떨어져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존재끼리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이어진 현상으로 보았다. 언어에서도 한국인들의 존재론은 이처럼 ‘한’적이다. 하나로 이어진 무엇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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