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의 재인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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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의 재인식 (2) 

 

 

사회교육의 실패 사례

 

의식주 생활은 그 외에도 유기적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그동안 묻혀 있어서 이야기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런 것을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이런 것을 오히려 천박하게 여겼습니다. 우리것은 뭔가 후지고 뒤떨어져서 상당히 잘못되고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희 대학에 어떤 연구소가 있어서, 요식업자를 불러 한차례씩 가르치는 위탁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연구소의 간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시에 있는 요식업 다방업 식당업 등의 주인들을 불러서 일주일동안 차례대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때 한 원로교수가 소장이었는데 그 교수가 저에게, "우리 수고했으니까,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해서, 어느 작은 초라한 밥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식당주인 아주머니가 그 교육을 받아서 우리 소장을 알아 보았습니다. "아이구, 아무게 교수님 오셨습니까!" 이리하여 방으로 들어가 밥을 먹고, 맥주 한잔하자고 하니까 그 주인이 직접 맥주를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맥주 한 잔을 소장과 저한테 권하면서 물었어요.

 

"소장님, 지난번에 저희들을 모아 교육을 열심히 하셨는데 그 교육을 성공적으로 한 것 같아요, 아니면 실패한 것 같 아요?" 그러니까 소장이 깜짝 놀랐지요. 아니 뭔 실수를 했길래 이 아주머니가 이렇게 도전적인 말을 하는가 싶어 당황한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혹시 제가 교육 중에 실례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실례한 것이 아니고 교육을 성공적으로 했느냐 못했 느냐, 성과가 있었나 없었나, 그걸 제가 여쭈어 보는 것입 니다." "아이고, 잘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교육을 시켰으면 잘했는지 못했는지 알게 아니오?" 그래서 그 교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아! 그러면 선생님께서 강의할 때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많습디까,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듣는 사람이 많습디 까?" 그렇지 않아도 내가 보니 태반은 졸더라고 말하니, 아주머니가 그것 보라는 투로 큰소리로, "이것 보라구! 조는 교육을 왜 합니까? 졸리는 교육을 ." 여러분들 중 군대 갔다온 분들도 있겠지만, 나중에 예비군 교육이나 민방위 교육 한번 가보세요. 저는 아예 잘 준비를 하고 갑니다. 교육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다 좁니다. 그 요식업자들에게도 위탁교육은 쓸데없는 교육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연구소의 소장이 왜 그렇게 졸았느냐고 물으니 아주머니는, "우리 같은 사람들 가만히 두었으면 밥장사나 잘할 건데 괜히 불러서는, 당신은 필리핀 갔을 때 그 곳 식당이 이렇 더라고 얘기하고, 시장은 일본에 갔을 때 저렇더라고 얘기 하고, 학장은 미국에 가니 어떻고, 또 누구는 영국 가서보 니 어떻고, 프랑스 가니 어떻고, 전부 외국나가서 본 식당 이야기를 왜 자꾸합니까? 외국 식당과 우리 식당을 비교해 서 도대체 뭐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래 우리 실정에 맞습니까? 당신, 외국나갔다 온 것 자랑할려고 우리를 모았습니 까?" 라고 하더군요. 저는 거기서 상당히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내가 학교교육에서 받았던 것이 사회교육에서도 그대로 거듭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아이들을 우리아이들답게 키울려면, 또 우리민족을 우리민족답게 키울려고 한다면, 민족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민족적인 내용을 민족적인 방식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적어도 인문과학과 예술교육에 있어서는 그래야 합니다. 자연과학의 경우, 그것은 언제 어디에서 누가 실험해도 같은 결과에 이르기 때문에, 민족과학을 외치는 것은 다소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문과학 분야나 사람의 정서와 관계되는 교육분야, 또한 예술적인 분야에 있어서 우리아이들을 배달민족답게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내용을 가지고 우리방식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서 민속과 민족문화의 중요성이 자연스레 대두되는 것입니다. 민족교육의 내용과 방식이 모두 여기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학교교육의 허상과 실상, 민족美學의 정립을 위하여

 

그럼 이제 우리의 학교교육을 되돌아 봅시다. 제가 교육받은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음악시간에 훌륭한 음악선생님이 음악의 3요소에 대해 강의합니다. 음악의 3요소가 무엇입니까? 박자, 가락, 화성인가 그렇죠. 이것이 음악의 기본되는 3요소인데, 이것은 음악에서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시설이 좋은 고등학교에는 음악감상실이 있습니다. 음악감상법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음악감상을 할 때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 적어도 5분 전에 입장해서 아주 정숙하게 듣고, 끝났을 때는 박수를 쳐야 합니다"라고. 우리에게 그런 음악감상의 전통이 있었습니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음악발표회에 가보면, 공연하는 중인데도 들락날락거리고, 아이들 데려와서 빽빽 울리기도 하고, 또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박수도 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식하고 부끄럽고 ', 뭐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이구! 우리는 음악 감상할 줄도 모르는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음악의 진짜 멋은 이런 데 있지 않습니다. 음악의 3요소를 서구음악의 기준으로 보면, 박자 가락 화성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서구음악 중에서 이태리음악을 기준으로 본 것입니다. 3요소 중에서 화성은 모든 나라의 음악에 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겐 우리음악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음악은 독특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쪽 음악의 기준으로 우리 음악을 보니까, 우리의 음악은 음악의 3요소도 갖추지 못한 부끄러운 음악으로 간주되고 마는 것입니다. 비유컨데 우리는 원래 밥그릇을 놓고 먹는데, 밥그릇을 들고 먹는 사람들의 기준으로 우리를 보면, 우리는 개가 되고 맙니다. 즉 우리 민족음악으로서의 장점을 그 나름대로 찾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장점이 무엇인가는 잠깐 미루어두고, 이제 미술시간으로 가 봅시다. 미술시간에 스케치를 할 때, 명암이 어떻고 색상이 어떻다고 이야기하다가 그다음 어디로 넘어갑니까? 원근법 이야기를 하지요. 원근법을 설명할 때, 선생님이 흙판에 철길이나 가로수가 즐비한 한길 같은 걸 그렸잖아요. 거리가 멀어질수록 폭이 점점 좁아지게 그렸습니다. 그런 것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우리 한국화를 보자고 하면 이제 절단나는 겁니다. 한국화에는 그와 같은 원근법이 없는 탓입니다. 산수화 같은 걸 보면, 산이 높고 절벽이 있고 소나무도 있고, 가까이에는 강이 있어 조그만한 배가 떠있고, 그 배 안에 사람이 보일락 말락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엔 서양식과 같은 원근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구! 우리 그림도 부끄럽네!'하는 소리가 나오겠죠.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서양의 그림은 어떻습니까? 그림을 액자에 넣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아야 합니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즉 서양그림은 감상하는 그림입니다. 물론 서양의 벽화는 예외이지만, 이른바 미술시간에 이야기하는 것들은 액자에 넣어놓고 감상하는 그런 그림입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멀리서 바라보는 감상용 그림이므로, 먼거리는 멀게 가까운 거리는 가깝게 나타내야 합니다. 그림과 내가 합일되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귀족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림을 액자에 넣어놓았을 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그림들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그림은 민화(民畵)라고 불리면서, 생활상의 실용적 필요에 따라 여러가지 쓰임새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쓰인 것이 병풍(屛風)입니다. 혼인식을 하든 회갑을 하든 또는 제사를 지내든 뭘 하든, 병풍이 따라다닙니다. 또 괜찮은 집에서는 늘 병풍을 사랑방에 쳐놓고 그 앞에 앉기도 합니다. 하지만 멀리서 그 병풍을 바라보면서, '야! 그 병풍의 그림 참 좋네!'하고 감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사 지낼 때는 거기에 조상신을 모십니다. 신위를 모십니다. 그 신위는 그림과 더불어 있습니다. 회갑 잔치할 때는 어떻습니까? 병풍 앞에 회갑상을 놓고, 그 앞에 부모님을 모십니다. 혼례시 폐백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림을 항상 등지고 있었습니다. 그림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사람이 함께 합일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산을 멀리서 감상하는 것이 산을 위하고 산을 즐기는 것입니까? 아니면 산 속에 들어가서 산과 더불어 있는 것이 산을 더 즐기는 것입니까? 그저 멀리서 '저 산 괜찮네' 하는 것보다는, 등산하는 것이 산을 더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그림은 그저 멀리서 보면서 감상하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 속에 있는 산수와 내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일체가 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그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연극 등 우리문화에 두루 있습니다. 서로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면서,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임진택씨가 안동문화회관에서 판소리 공연을 하는데, 공연이 이루어지질 않았습니다. 안동사람들이 판소리를 한번 들어봤어야죠. 판소리에는 추임새가 들어가야 하는데, 추임새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냥 멍청하게 노래 감상하듯이 들으니까 소리 신명이 날 턱이 없었던 겁니다. 일정한 대목에 가면, '옳지로!, 좋다!, 얼씨구!' 하든지 '아문!, 그럼!' 하면서 박수치고 추임새를 넣어야 판소리가 제대로 될텐데, 안동사람들이 추임새 넣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공연을 잠시 중단하고, 임진택씨가 직접 추임새 넣는 법을 가르치고 난 다음에 공연을 끝마쳤습니다.

 

탈춤 공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안동대학 탈춤반 학생들의 지도교수노릇을 했습니다. 탈춤반 학생들의 공연이 좋았나 안좋았나 또는 공연이 재미있었나 없었나 라는 평가는, 자기들이 연습한대로 딱 맞아 떨어지게 실수없이 공연한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관중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탈판에 뛰어 들어서 같이 호흡하고 춤을 같이 췄는냐에 따라서, '잘 되었다' 혹은 '잘못 되었다'라고 평가하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자! 우리 한번 같이 어울려서 춤이나 추세'하고 덩더쿵하며 장단이 나올 때, 앉아있던 관중들이 나와서 춤을 추어야 되고, 또 추임새를 넣어가며 함께 즐겨야 탈춤이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춤이든 탈춤이든 연극이든 음악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음악은 한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부르면, 대부분 사람들이 침묵하고 귀기울여서 듣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좋으면 '얼씨구 좋다', '그렇지!'하고 맞장구를 치거나 함께 부르며 후렴구를 받아야 합니다. 구조적으로 같이 부르게 되어있는 것이 우리 음악입니다. 특히 민요 같은 것은 구조적인 바꿈노래입니다. 먼저 패를 둘로 가릅니다. 한쪽에서 먼저, "이물꼬 저물꼬 헐어놓고 쥔네양반은 어디갔노"하며 모내기 노래의 앞소리 한 가락을 부르면, 받는 쪽에서 "문어야 대전복 손에 들고 첩의 집에 놀러갔다"고 합니다. 그럼 또 이쪽에서, "무슨 놈의 첩의 집엔 밤에도 가고 낮에 또 뭐하러 가노?" 그러면 "밤에는 잠자러 가고 낮에는 술마시러 간다." 이런 식으로 되어있는 것이 민요입니다. 구조적으로 혼자 부르고 감상하는 노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노래를 기능적으로 잘 못하는 경우에는 전문적인 소리꾼이 앞에서 소리를 매겨 주는데, 그걸 매김소리라고 합니다. 소리꾼이 소리를 매기면 사람들이 소리의 박자에 따라서 후렴구를 부릅니다. '어허룰루 상사듸야' 이것만 하던지, '아리랑'을 하든지, '쾌지나 칭칭나네'를 하든지 해서 전부 한덩어리가 되어 함께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술은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 주체와 객체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습니다. 즉 서로를 하나가 되게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림과 연극에서 그렇고, 노래와 춤에서도 그렇고, 풍물에서도 그렇습니다. 반면, 오케스트라 연주하는데 구경꾼이 같이 뛰어들어 춤을 추거나, 기타나 바이올린을 가지고 올라가 거들었다가는 난리납니다. 그러나 우리 풍물에서는 풍물을 하기 위해, 자기집 꽹가리를 가져와서 같이 쳐도 되고, 악기를 서로 바꾸어 쳐도 되고, 또 무엇 하나가 빠져도 됩니다. 그러면서도 조화가 되는 것이 우리 풍물입니다. 여럿이 함께 풍물을 맞추어 친다고 해서, 획일적인 어떤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하나의 개성이 존중되면서 동시에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풍물입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는 전체적인 것입니다. 그 중에 어느 한녀석이라도 실수하면, 그 공연은 망가지는 겁니다.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서 정확하게 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풍물은 그렇지 않아요. 전체가 같이 어울려서 신바람을 돋우다가도, 장구잽이가 나와서 한번 설칩니다. 또 고수 북잽이가 나와 설칩니다. 꽹가리 꽹수나 징잡이 징수도 자기 장기를 발휘합니다. 상모돌리는 놈은 상모돌린다고 한판 신명나게 자기 장기를 뿜어냅니다. 개체의 개성이 존중되면서 동시에 전체적인 화합성을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것이 우리예술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준거(準據)입니다. 이 준거는 아예 제쳐놓고 서양예술의 기준으로 우리예술을 보니까, 우리것이 늘 부끄럽고 잘못되고 후져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시 선발기준이 어떻습니까? 허리는 잘록해야 되고, 가슴과 엉덩이는 윤곽있고 볼륨있게 나와야 되고, 눈은 쑥 들어가고 코는 나와야 되고, 쌍꺼풀이 있어야 하고, 피부는 희어야 하며, 키는 몇센치 이상 되어야 한다는 등이 아마 대략적인 그 기준일 겁니다. 이렇게 서구사람들의 미적 기준에 맞추어 한국여성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고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려고 하니까, 한국여성들을 자꾸만 주눅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성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럽지만, 좌우간 여기있는 분들 중에는 미스코리아 후보에 들어갈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호감이 갈 정도로 매력적이고 데이트도 해보고 싶은 그런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피부가 제법 까무잡잡하면서도 매력적인 아가씨가 있고, 쌍꺼풀이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쁜 분도 있습니다. 콧날이 오똑하지 않았는데도 뭔가 저를 끄는, 남성들을 끄는 그런 매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엄연히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서 서양의 미개념으로 우리를 자꾸 재어버리니까, 우리는 시원찮은 사람, 후지고 못난 사람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수립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민족미학(民族美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 민족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찾고, 그 아름다움의 기준을 창조적으로 발전, 유지시켜야 합니다. 이런 농담이 있잖아요.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에 갔는데, 아버지가 목욕탕에 들어가서 "어! 시원하다"하니까, 아들도 시원한 줄 알고 따라 들어갔다가 너무 뜨거워 얼른 튀어나오며 "세상에 믿을 놈 한 놈 없다"라고 말했다는 이런 농담, 이것은 우리 민족미학의 단적인 특성과 교육의 한계를 나타내는 한 보기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말하는 '시원하다'는 표현이 민족미학에 입각한 미학적 용어라고 한다면, 아들이 생각한 '시원하다'는 것은 요즘 서양교육을 받아 'Cool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시원하다'는 것은 'Cool하다'는 것을 포함하는 시원함입니다. 시원한 것이란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이릅니다. 즉 따뜻한 탕에 들어가서 몸을 담그니, 몸이 편안해져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명태국물을 마시면서, 그 국물 참 시원하다고 합니다. 속이 편안하니까요. 어른들 다리의 관절이 아프거나 쑤실 때 손자가 주물러 주지요. 또 어깨도 주물러 주잖아요. "아이구! 시원하다!" 합니다. 그것은 서늘한 것과 무관한 말입니다. 시원시원하게 잘 생겼다든가, 말을 속시원하게 잘 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민족미학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고, 전부 서양식으로 가르치니까 이런 농담이 생긴 것입니다.

 

 

 

춤 이야기 하나 : 춤바람

 

이제 춤 이야기로 가볼까요. 춤에 관해서 제가 겪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칠팔년 전에 동료교수가 제 방에 찾아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길래, 무슨 이야기인가 물었습니다.

 

"자네 부인 요새 춤바람 난 것 알고 있는가?" "이 사람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건가? 농담하는 것은 좋은데 나를 가지고 농담해야지, 우리 집사람 가지고 농담하는 것 은 지나치지 않은가? 좀 삼가해라!" "어! 이 사람, 춤바람 났는지 모르는가 보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러고서 하는 말이, 제 부인이 한 일주일 전부터 또래되는 부인들과 같이 시간맞춰서 떼지어 다니는데, 서로 연락해서 10시부터 12시까지 나이도 어린 사내녀석들과 손잡고 쌍쌍춤을 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농담하지 마라고 하면서 저는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계속해서 농담이라고 안믿고 웃기만 하니까, "이사람 이거 큰일났구만! 정말 이거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춤추는 현장을 보여줄께. 지금 11시니까 같이 가자" 하면서 손목을 잡고 끌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야! 이게 진짜구나. 마누라하고 이혼을 해야 되나 어쩌나'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습니다. 알고 보니까 춤추러 다니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혼할 일은 아니였습니다.

 

그 때 제 맏아이가 사내녀석인데, 국민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입니다. 그녀석이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가을 운동회를 하는데, 연습하는 프로그램 중 어머니와 함께 업어주고 뽀뽀하며 춤추는 프로그램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걸 연습한다고 매일 학교에 갔던 겁니다. 학교에서 운동회 연습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친구는 저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한 것이었죠. 그런데도 왜 내가 이혼을 해야 되겠다고까지 생각을 했는지, 그 이유는 오늘날 우리의 춤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춤을 으례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예를 들어 오늘 같은 더운 날씨에 화려한 양복차림의 멋쟁이 젊은이가 있다면, '저 사람 뭐하는 사람인가, 저 사람 춤꾼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아니, 저녀석 알고 보니 제비족이네!'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묘령의 아가씨가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지나가면, '아니, 저 아가씨 우리 이웃 아가씬데, 춤추러 다니는 아가씨 아닌가?' 그러면 뭐 어디 극장식 캬바레 같은 데서 스트립쇼 하는 그런 아가씨인 줄 알고, '그 아가씨 보기보다 사람 베렸네!'하고 생각합니다. 중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스코텍 같은 곳에 자주 출입하면 탈선한 것처럼 여깁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춤이란 것을 잘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우리춤의 정서, 우리노래의 정서, 우리 그림의 정서 등에 입각해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악 이야기 : 부끄러운 음악선생

 

춤 이야기하기 전에, 어떤 음악선생님의 고백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최순규 선생님이라는, 전북대학 음악과를 나와서 모 중학교 음악선생님을 하고있는 분입니다. 한번은 저를 찾아와 하는 말이, "선생님, 저는 음악선생을 부끄러워서 못하겠습니다." "아이구! 왜 그러십니까?" "저는 아이들에게, 비록 시골아이들이지만 음악적인 정서를 함양시켜 일상생활에서 건강한 음악생활이나 음악문화를 누리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교과서에 있는 노래 외의 건전한 노래도 많이 가르쳤어요. 촌아이들이 피아노 같은 것을 반주하면 잘 어울리지 않으니까, 통기타도 하나 사서 치면서 좋은 노래를 많이 가르쳤어요. 그 애들이 3학년이 되어 수학여행을 갈 때 같이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버스안에서는 물론이고 장기자랑 시간에도 어느 한 녀석조차 음악시간에 제가 가르친 노래들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악을 왜 가르치는가, 음악을 가르치기 위해서 내가 과연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때 교감 선생님도 같이 따라갔는데, '저 최선생은 음악시간에 대체 뭘 가르쳤길래, 아이들이 뭐 건드리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선화 어쩌구 저쩌구 저따위 노래만 부르는가?' 하고 나무라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나무라지는 않았지만요.

 

선생님 왜 이렇습니까? 제가 음악선생이라는 게 참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쳤으면 가르친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효과가 없는 것은 선생님이 가르친 노래가 건강한 노래일지는 몰라도,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 노래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어디서 노래를 배웠습니까? 학교 같은 데 가서 노래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음악시간에 음악선생님에게 노래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음악생활을 우리보다 훨씬 더 풍부하게 했습니다. 놀이할 때는 놀이노래로 강강술래를 하면 강강술래놀이를, 놋다리 밟기하면 놋다리밟기 노래를 불렀습니다. 또 일할 때는 일노래, 맷돌 돌리면 맷돌노래, 물래질 하면 물래노래, 베짜면 벳틀노래, 모심기 하면 모심기노래, 논매기하면 논매기 노래, 상여메고 가면 상여소리, 회갑잔치할 때는 회갑노래가 각각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자기 삶의 정서나 현실적인 감흥을 그대로 엮어서 노래로 표현한 것입니다. 요새 송창식씨 같은 분이나 작사, 작곡, 가수를 겸하는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작사, 작곡, 가수를 겸했습니다. 음악시간에 음악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에도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작사 작곡 가수를 겸하거나 그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잘 못합니다. 자기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음악교수도 미국에 가서 큰 실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미국의 무슨 음악학교에서 1년간 교환교수로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국제음악학회행사를 마치고 뒷풀이 시간 중, 각자 자기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희망의 나라 라는 노래를 불렀나봐요. '배를 저어 가자 험한 바다 건너 저편 언덕에'로 시작되는 노래를 불렀어요. 이 노래를 부르고 나니까, 이태리 사람이 "그게 어찌 당신 나라 노래냐? 그것은 우리나라 노래다"라고 따지고 들어서 망신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우리나라 것인지는 모르지만, 곡의 양식은 이태리음악이예요. 그러니까 거기서 우리나라 노래를 부를려면, 적어도 농요는 못부르더라도 아리랑 정도는 불렀어야죠. 결국 그 교수는 음악의 대가이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노래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유치원이나 국민학교 1,2학년 시험문제에 보면 이런 것이 나옵니다. 짝짝이나 트라이앵글의 그림를 그려놓고, 어떤 악기인지 악기이름을 복잡한 외래어로 써넣는 문제입니다. 짝짝이라고 쓰면 틀리고, 케스터네츠로 써야 맞지요. 제 딸아이가 이제 국민학교 5학년인데,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피아노를 배웠어요. 피아노를 자기 엄마한테 6년동안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피아노 치는 것으로 우리가족이 음악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큰댁에서 할아버지가 왔다고 해서 피아노 치고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또는 내 생일이라고 해서 딸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피아노 때문에 이사할 때마다 고생만 했습니다. 그것은 음악 외적인 문제이니까 제쳐두겠습니다. 그 피아노 때문에 우리 딸애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우리 애 나중에 커서도 한 맺힐거예요. 애 엄마가 부엌에 있으면서 무슨 곡을 몇번 치도록 시킵니다. 피아노 학원에 가면 음악선생님이 무엇을 몇번 쳐와라 그러죠. 몇번 치는데 틀리게 치면 마누라가 다시 몇번 더 치게 합니다. 그 때 또 틀려요. 그러면 "그것도 틀려" 하면서 부엌에서 나와 막 나무랍니다. 그러면 딸애는 질질울면서 몇번 더 칩니다. 그렇게 하다가 말았어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것을 실제 음악생활에 이용하려고 하면,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레슨을 어지간이 받아도 생활 속에서 이용하기가 어렵습니다. 투자를 엄청나게 해야 합니다. 그따위 교육을 가르치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에게 그게 먹혀 들어갑니까? 제 친구 중에서 고등학교 때 트럼펫을 다루던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은 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농사 현장에 가보면, 트럼펫은 간 곳 없고, 농악대 상쇠 노릇을 하고 있는데, 꽹과리를 아주 잘 두둘깁니다. 그 얼마나 신명나는 일입니까? 음악시간에 우리 음악을 가르치지 않고 서양 음악체계에 맞는 음악을 가르치니까, 점수따기 위해 할 수 없이 음악공부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실제로 흥미있어 하고 또 스스로 열심히 배우는 것은 대중가요입니다. 그럼 대중가요는 우리음악과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다. 우리 음악적인 정서와 맞지는 않지만 대중음악, 이른바 유행가는 본질적으로 국경이 없습니다. 세대차도 없습니다. 민족적 개성도 없구요. 그것은 상업적인 음악이어서, 널리 보급하고 팔아먹기 위한 음악입니다. 그러니까 구조적으로 누구든지 좋아하겠끔, 그래서 많이 팔아 먹을 수 있도록 만듭니다. 인기를 많이 얻어야 작곡가도 작사가도 가수도, 음반업자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떤 사람이 언제든지 불러도 좌우간 좋고, 누구든지 즐겁게 즐겨 부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유행가입니다. 즐거운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상업적으로 보급하고 광고하고 판매하니까, 누구나 쉽게 대중음악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음악시간에 가르치는 딱딱한 노래보다는 상대적으로 그게 더 배우기가 쉽고, 부르기도 쉽구요.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그런 노래를 보면 이상한 노래라고 안부르잖아요. 우리 어른들은 우리의 음악적 정서를 그대로 타고 났고, 일하면서 생활 속에서 노래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춤 이야기 둘 : 양춤만 춤으로 아는 무용가

 

학생시절 때 저는 교양무용 시간에 무용교수님으로부터 춤을 배웠습니다. 무용선생님한테 제가 제일 처음 배운 것은 스텝이었습니다. 원스텝, 투스텝, 그 다음에 홉스텝,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걸 배우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어릴 때 골목에서 신나서 하던 동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즐거우면 저절로 하던 동작을 무용시간에 배웠던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훨씬 뒤에 Social dance라는 서양무용 곧 양춤을 가만히 보니까, 전부 스텝이었습니다. 그러면 '서양 춤은 왜 스텝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서양춤의 특성은 쌍쌍춤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끼고 추니까 손을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서로 마주서서 움직이니까 다리가 엉키면 곤란합니다. 또 발을 밟으서도 안됩니다. 서양춤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우리나라에 대중적으로 보급된 양춤은 그러한 것들입니다. 다시말해, 스텝을 제대로 밟는다고 하면 서양춤은 다 배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춤은 어떻습니까? 우리춤은 풍문잡이 잡색춤이자 탈춤입니다. 우리춤은 대동춤으로서 여럿이 모여 팔 벌리고 그냥 음악에 맞쳐서 돌아가면 춤이 됩니다. 더 잘 출려면 팔과 다리를 장단에 맞게 약간씩 굽혔다 펴면 됩니다. 하회탈춤 같은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 동작을 보면 일할 때의 동작과 관계가 있습니다. 모심기, 도리깨질, 괭이질 등 전부 일동작과 관계가 있습니다. 제가 읽은 카시러가 쓴 {Language and Mith}라는 책에, 춤이라는 말과 일이라는 말의 구분이 없는 어느 원시종족이 있었습니다. 춤이 곧 일이라는 말입니다. 두레패들을 보면, 일하고 돌아올 때 쾌치나 칭칭나네 하고 다시 길놀이하며 춤추고, 또 저녁먹고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쾌지나 칭칭나네 하며 춤을 춥니다. 누가 보면, 저렇게 하루종일 땀흘려 일하고 또 땀흘리며 춤을 추느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낮동안에 일하면서 맺혔던 것을 풀어주는 춤입니다. 일할 때 같은 동작을 계속 되풀이하잖아요. 그러니 몸의 근육이 결립니다. 같은 동작을 하루종일 반복하니까, 허리가 아프고 몸 여기저기도 결리는데, 그것을 여러가지 다양한 춤으로써 풀어주는 것입니다. 또 마음도 결립니다. 양반지주들은 일을 안하니까요. '우리는 무슨 팔자가 사나워서 이렇게 땡볕에 모내기 하나!'고 생각하면 마음이 맺히고 결립니다. 그것도 노래를 통해 풀어버립니다. 실제로 모내기하는 것과 모내기를 흉내내는 것은 원시적인 사고에서는, 일체감 곧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낳는다는 주술적 법칙에 의해서,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춤이라는 것은 이른바 퇴폐적이고 인간의 마음을 소비적으로 들뜨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일춤이었습니다. 춤이 곧 일이나 다름없는 생산적인 구실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춤을 춥니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도리도리를 시킵니다. '도리 도리', '헐렐루야 헐렐루야', '조막조막 조막조막' '진진 진진' 등과 같은 동작을 시킵니다. 이것들은 어린아이가 박자와 가락에 맞춰서 움직이게끔 하는 동작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이 금방 할 수 있는 일종의 춤입니다. 그런 후에 상체를 움직이게 됩니다. 이제 설 때쯤 되면 따로따로 춤추게 합니다. 그 때부터 무덤가에 가서까지도 춤춥니다. 무덤을 다질 때 덜구꾼들이 덜구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흙을 다집니다. 이한열군 장례식 때 이애주 선생이 춤췄잖아요. 한풀이 춤을 추었는데, 어느 무용평론가가 비판을 했습니다. 민속춤이 뭔지, 장례식이 뭔지 모르고 춤을 아무 때나 춘다고 해서, 그 때 논쟁이 제법 벌어졌습니다. 장례행렬의 맨 앞에 풍물잡이가 풍물을 치고, 그 다음에 춤꾼들이 춤을 추며 따른다는 우리의 전통을 전혀 모르니까, 그런 무식한 비판을 한 것입니다. 춤은 뭔가 화려한 무대조명을 받으면서 야시시한 옷을 입고 추어야 춤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습니다. 치마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위로 올라가는 치마를 입어야 춤이 되는 줄 알고있나 봅니다. 즉 백조의 호수 같은 그런 발레를 추어야 춤이라고 생각하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무지한 편견이, 이애주 선생의 춤을 비판한 것입니다. 우리 삶과 아주 동떨어져 있는 그런 춤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사람들,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난 뒤 미국이나 구라파로 유학한 사람들, 즉 우리의 일상적인 춤문화와 동떨어져 있는 춤을 진정한 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애주 선생의 춤을 보고 그렇게 매도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에게 퇴폐적인 춤, 밤무대에서 생업으로 추는 춤, 스트레스 해소한다고 추는 그런 춤을 진정한 춤이라고 한다면 더욱 난리납니다.

 

춤의 속성은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말로 못하는 것을 노래로 하고, 노래로도 못하는 것을 춤으로 합니다. 춤은 논리를 넘어섭니다. 쿠르트작스가 쓴 {세계 무용사}에 보면, '춤은 종교적 계급적 인종적 경계와 벽을 허물어 준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노래를 같이 불렀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춤을 같이 추었다 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춤은 하나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려진 공간, 대중적인 공간에서의 춤은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마을 사람들이 마을광장 같은 공개된 공간에서 지신밟기나 풍물놀이, 또는 화전놀이나 강강술래를 한다면, 이 때 마을 사람들은 같이 춤추고 노래부르면서 하나가 됩니다. 이런 춤은 대동성 연대성을 형성시켜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구적인 대중춤은 공동체의식은커녕, 춤의 본질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폐쇄된 공간의 어두운 조명 밑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음침하게 추는 춤, 이것들이 결국은 여러가지 향락산업이나 퇴폐적인 유흥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또 인신매매와 같은 아주 부조리한 사회현상도 빚었습니다. 제가 아까 우리 마누라를 의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퇴폐적인 춤문화를 전제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날 저녁에 돌아오면서, 순간적으로나마 죄없는 마누라를 의심하고 이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을 마음속 깊이 부끄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는 말이라도 더 따뜻하게 하고, 마누라를 좀 더 사랑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학교교육으로 우리문화를 부끄럽게 생각해오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 이제부터라도 우리문화를 더 사랑하고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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