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이국종 교수 “기대도 희망도 없지만, 원칙 버리진 않겠다”

 

 

이국종 교수 “기대도 희망도 없지만, 원칙 버리진 않겠다”   

 

한겨레 2017-09-29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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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200번을 헬기로 환자를 이송하고, 정 위급할 땐 헬기 안에서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주무르며 저승의 문턱까지 간 환자의 생명을 구해냈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오른쪽 어깨는 세월호 사고 현장에 갔다가 부러졌고, 왼쪽 무릎은 헬기에서 뛰어내리다가 꺾여서 다쳤다. 왼쪽 눈이 거의 실명이 된 건 2년 전 직원건강검진에서 발견했다.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 지난 20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수원/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나는 그를 ‘국내 외상외과 최고전문가’ ‘아덴만의 영웅’이라 부르지 않으려 한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석해균 선장을 현지까지 날아가 극적으로 살려내고 드라마 <골든타임> <낭만닥터 김사부>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그를, 언론과 방송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국민영웅, 천재적인 외과의사라고 극찬하지만, 청중들의 상찬과 갈채는 짧고 그를 무릎 꿇리려는 현실의 거대한 벽은 완강하고 압도적이다. 그에게 쏟아지는 ‘최고’ ‘유일’ ‘영웅’이라는 찬사는 그를 질시하는 이들에 의해 종종 독 묻은 비수가 되어 되돌아오고, 그가 힘겹게 따낸 제도의 성과는 잇속을 차리려는 이들의 잔칫상에 공출된다. 이국종(48)은 ‘홀로 우뚝 선 영웅’이 되기를 바란 적이 결코 없었으나, 세상은 그를 고립된 링 안에 밀어 넣고 슈퍼맨 같은 투혼을 발휘하길 기대하며 응원한다. 잔인한 짓이다.

 

지난 20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아주대병원의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야간당직을 서는 그가 위급한 외상환자 수술을 하거나 중환자를 돌보는 사이사이, 잠시 짬나는 시간을 이용해 이뤄졌다. 첫날은 새벽 4시, 둘째 날은 새벽 5시까지 그의 곁에 머무르며 나눈 이야기가 25개 녹음파일로 동강동강 저장되었다. 환자에게 달려갔다 올 때마다 그는 전투를 치르고 터덜터덜 막사로 돌아오는 병사처럼 지쳐갔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카리스마’의 갑옷을 벗었을 때, 이국종의 맨얼굴은 폭풍우에 휘달리는 섬세한 꽃잎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주말도 휴일도 없이 36시간 연속으로 밤새워 일하고 잠시 눈을 붙인 뒤 다시 36시간 연속으로 일하는 생활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가 틈틈이 메모해온 비망록엔 숱한 좌절과 절망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내 앞에 놓인 싸움이 아득한 것임을 생각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전장에서 적은 병력과 남루한 병기로 나아가고 물러서기를 반복해야만 한다. 그래야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그사이 생은 수없이 죽어갈 것이고 조촐한 병력은 쇠할 것이다. 기다림은 길고 지난할 것이나 그것을 묵묵히 버텨낼 자신은 내게 없었다.(이국종, 미간행 비망록 중에서)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미리 준비해 온 질문 따위는 밀쳐두기로 했다. 내가 그에게 궁금한 것을 묻기보다, 그가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에 꼼꼼히 귀 기울이기로 했다. 그를 절망케 한 것들, 그가 애타게 호소해온 것들,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과 차마 그럴 수 없는 마음 사이의 갈등, 헌신적이고 강직한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과 죄책감에 대해서 그는 가슴속 긴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번 인터뷰는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이 아니라, 요지부동의 철벽에 피 흘리며 기어오르는 자연인 이국종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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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헤치고 소방헬기가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옥상에 내려앉자 대기하던 이국종 센터장 등 의료진이 이송된 응급환자를 이동식 침대에 옮기고 있다. 수원/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헬기로 실려 온 무명남 

그와의 첫 대면은 옥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뤄졌다. 약속대로라면 저녁 7시 병원 구내식당에서 그를 만났어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막 환자가 도착할 거예요. 옥상 헬기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는 수술복 위에 형광색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3~4분 뒤, 밤하늘을 헤치고 소방헬기가 외상센터 옥상으로 다가와 내려앉자 현장에 급파되었던 의사와 간호사가 먼저 내리고, 옥상에 대기하던 팀이 이동식 침상에 신속하게 환자를 옮겨 실었다.

“젊은 친군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국종이 환자를 살피며 물었다. 

“신원은 모르겠고요. 오토바이 티에이(TA·교통사고)입니다. 경찰이 현장에서 지갑이랑 핸드폰 가져갔으니 가족한테 연락하겠죠.”

 

환자는 곧장 1층의 트라우마 베이(급성구역)로 옮겨졌다. 중증외상환자의 진단과 검사, 수술을 한곳에서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었다. 환자가 들어서자마자 벽면에 붙은 타임워치가 시간을 재기 시작하고, 예닐곱 명이 달라붙어 제각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국종이 초음파를 찍는 사이, 다른 스태프는 주렁주렁 수액을 연결하고, 혈액을 채취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름을 알 수 없어 차트에 ‘무명남’(無名男)이라 적힌 환자가 중환자실로 실려 나갈 때까지 걸린 시간은 23분. 사고현장에서 이송되는 데 걸린 시간 7~8분을 합쳐도 30분여 만에 처치가 끝난 셈이다.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자상과 같은 중증환자들에게 사고 후 1시간은 생사를 가르는 골든아워다.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그와 조금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헬기로 환자 이송하는 걸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이름도 모르는 이를 살리려고 이렇게 애쓰는 분들이 있구나 생각하니 왠지 울컥했어요.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저한테 잘못 오신 것 같아요.”

그가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당황스러웠다.

 

-왜요? 기를 쓰고 살려내려는 분들을 보니 생명에 대해서 경외감도 들고….

“굉장히 아름다운 생각이지만, 생명을 살리네 어쩌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오히려 이 일을 하루도 못 하죠. ‘내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하는데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지?’ 그런 생각이 들 거 아녜요? 의사가 헬기 동승하는 거, 의료보험 수가 10원도 안 잡혀요. 저희는 성과급도 거의 없어요. 의료보험 적자 난다고 월급이 깎이기도 하고요. 전 그냥 일로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저를 잘 모르시는군요.”

 

-제가 뭘 모르는데요?

“제가 이 정도인 걸 모르시고, 너무 좋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밖에서도 쓰레기, 안에서도 쓰레기. 다들 절 싫어해요.”

 

-왜 싫어해요?

“시끄럽다고. 나만 없으면 ‘에브리바디 해피’한데 자꾸 시끄럽게 한다고요.”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말엔 냉소와 자괴감, 분노와 절망감이 뒤얽혀 있어서 단방에 진심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다행인 건, 그가 나한테 가라는 소린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와 그의 동료들을 ‘위대한 휴머니스트’로 단순화할까봐 그는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죽음에도 계급이 있다

아주대병원의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는 지난해 6월 지상 5층, 지하 2층의 독립된 병동으로 공식 개소했다. 중증외상환자의 진단과 검사, 수술에서 입원까지 한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시설로 트라우마 베이 8개와 중환자실 40병상, 일반병실과 각종 검사실 등을 갖추고 있다. ‘중증외상'이란 다발성외상을 가리킨다. 큰 물체에 부딪치고 깔리거나 추락해서, 사지와 뼈, 장기에 복합적으로 손상이 오고 출혈이 심한 환자들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조치해야 살릴 수 있다. 우리나라 외상환자는 전체 응급실 내원환자의 20~35%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35% 이상은 이송 과정의 문제, 응급치료의 미흡함 때문에 살릴 수 있는데도 죽음을 맞이한다. 

대형 병원은 병상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 수술 시점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일반질환 환자들을 선호하고, 암센터나 뇌심혈관계 클리닉처럼 돈이 되는 질환에 집중한다. 중증외상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길에서 죽고, 수술방이 없어 죽고, 집도의가 없어 변변히 손도 못 써보고 죽는다. 그들 대부분은 전화 한 통으로 의사를 불러낼 ‘빽’도 연줄도 없는 서민들이다. 2010년 당시 <한겨레21> 김기태 기자가 일주일간 이국종 팀과 동숙하며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증외상환자 대다수는 음식점 배달부, 마트 판매원, 일용직, 생산직, 영세자영업자, 무직자 들과 같은 기층민이었다.

 

-해외에서도 중증외상환자들 중에 육체노동자가 많습니까?

“모든 나라가 다 그래요. 물론 사무직도 다칠 수 있지만 출퇴근하다가 다친다든가 하는 거지, 어디서 떨어지거나, 뭐가 무너져서 다치진 않잖아요. 선진국에서 외상센터를 세우는 건, 국가경제를 바닥에서 떠받치고 있는 근간이 이런 블루칼라들이기 때문이에요. 군인들 위해서 통합병원 만들고 경찰 위해서 경찰병원 짓는 것처럼, 사회기간산업요원으로서 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다 다치면 잘 치료를 받게 해줘야 위험한 산업현장으로 들어가라 할 수 있을 거 아녜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되겠군요.

“그 사람들을 살리는 건, 국가의 생산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일이죠. 외상은 40대 이하 젊은이 사망원인 1위입니다. 아까 들어온 오토바이 환자도 그렇잖아요. 에어백 여섯 개 달린 고급차 타고 다니면 그렇게 깨졌겠어요? 오토바이 택배일 하는 청년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젊은 친구가 죽지 않고 살아나면 평생 일을 할 것 아녜요?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전에 택배 알바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 나서 결국 다리를 끊어낸 친구가 있었는데, 장애가 있어도 큰 기업에 취직했다고 고맙다고 찾아왔더라고요. 젊은 친구들은 살려내기만 하면 어떻게든 다시 일하려는 의지와 체력이 있어서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요.”

 

-‘예방가능 사망률’이라는 게, ‘신속하고 적절하게 치료하면 살릴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한 비율’을 뜻하는 거죠? 2008년도에 이화여대 정구영 교수가 조사한 게 35.2%였어요. 사망자 셋 중 하나는 살릴 수 있었단 얘기죠.

“실제론 그것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해요.”

 

-그래서 정부가 이걸 2015년까지 20%로 감소시키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최근 통계가 나온 게 있나요?

“정확한 기준이나 데이터 자체가 없어요.”

 

-그럼 20%대로 줄이니 어쩌니 하는 건….

“쉽지 않죠. 제가 2007~2008년 영국 외상센터에 있을 때 차트를 보여드릴까요? 환자 하나가 죽으면 ‘사망환자 리뷰’(mortality case review)라는 걸 작성해요. (차트 가리키며) 여기 보세요. 헬기 출동 요청한 게 8시40분, 헬기 현장 도착이 9시5분. 그러곤 환자 상태가 어땠고 무슨 검사와 처치를 했는지 빠짐없이 적어요. 그걸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죽음을 막을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preventable, non-preventable) 4단계로 나눠서 결론을 내죠.”

 

이국종은 내게 관련 논문을 찾아서 뽑아주고, 그가 노트북에 저장해 둔 도표나 그림을 가리키며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태도는 식사할 때완 사뭇 달랐다. 내가 그의 ‘전설적 에피소드’나 미담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는 점이 그를 적이 안심시킨 듯했다. 

 

-우리도 저런 식으로 사망자 리뷰를 작성하나요? 막을 수 있는 죽음인지 아닌지?

“못 적죠. 차트 남기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죠.”

-그럼 예방가능 사망률 통계를 낼 수 있는 1차 데이터가 없겠군요.

“데이터도 없고, ‘엇 뜨거라!’ 싶어 서로 건드리지도 않죠. 몇 개 병원이 파일럿 스터디 수준으로 한 게 다예요.”

 

 

‘이국종법’이 생겨도 변하지 않는 것들

이국종이 외상외과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건 아주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이듬해인 2003년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병원에서 연수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스승인 데이비드 호이트 교수(현재 미국 외과학회장)는 입버릇처럼 ‘템포’(tempo)를 강조했다. 의사들이 병원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직접 출동하는 ‘병원전단계’에서부터 ‘응급처치’와 ‘수술’ ‘중환자실’과 ‘재활치료’의 5단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일정한 템포로 지체 없이 이어질 때 환자는 산다. 2007~2008년 영국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 일한 것도 그에겐 큰 자산이 되었다. 의사들은 병원 옥상에 상주하는 헬기를 타고 하루 4~5차례씩 사고 현장에 직접 출동하고, 악천후에도 목숨을 걸고 환자에게 달려갔다. 

 

이국종이 꿈꿨던 건, 한국에도 이런 세계 수준에 맞는 외상외과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다.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해서 골든아워 안에 환자를 이송하고 수술해서 살려내는 일.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 적자만 안기는 ‘골칫덩이’였다.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보험수가는 터무니없이 낮아서, 죽어가는 환자를 많이 살려낼수록 적자는 늘어났다. 2009년 8억원이 넘던 외상외과의 적자는 2012년도 20억원까지 치솟았다. 그가 석해균 선장을 구해낸 이후 환자가 더 늘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선 그를 노골적으로 견제하거나 해임하려는 시도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의 이름을 딴 이국종법이 2012년 제정되고 전국 권역별 외상센터에 정부 지원을 한다는 방침이 정해지자, ‘이국종이 쇼맨십을 앞세워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비난까지 들끓었다.

 

-‘이국종법’으로 전국에 권역별 외상센터가 만들어졌으면, 그 권역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중증외상환자도 곧바로 센터로 이송되고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지난해에도 두 살짜리 아기가 교통사고 나고도 치료할 곳을 찾지 못한 채 6시간을 허비하다가 죽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됩니다.

 

“갈 길이 멀죠.(한숨) 정부에서 재정 지원한다니까 당장 자기네 지역에 외상센터 안 지어주면 수많은 환자가 피 흘리고 죽어갈 거라고 사업계획서 거창하게 만들어 올렸단 말이에요. 그런데 막상 외상센터 지정되고 지원금 받으면서부터는 환자가 없다고 배 째라 해요. 하루 한 명이 오든 100명이 오든 받는 지원금은 똑같으니.”

 

-환자는 갈 곳이 없고 외상센터엔 환자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죠?

“제대로 하는 모범을 한두 개 만들고 점차 그걸 세포분열 하듯 늘려가야 되는데, 외상외과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들로 외상센터를 구성하니까 배가 산으로 가버렸어요. 정부는 일을 왜 그런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와장창 뽑아서 쫙 갈라서 아쉬움 없이 뿌려줘야 뒷말이 없으니까 그런가 보죠.”

 

야간엔 뜨지 않는 닥터헬기

-자격과 실적이 부족하면 외상센터 지정을 취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준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정 취소하고 지원금 환수하도록, 법에는 나와 있어요. 근데 그걸 누가 하겠냐고요? 관료주의에 요령주의가 겹겹이 얽혀 있는데. 외상센터 전용병상이 일반환자 진료에 전용되어선 안 된다고 버젓이 법에 있는데도, 환자가 없으니 외상센터 의사들을 다른 업무에 투입하겠다고 난리치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나라에서 월급을 안 받으면 모를까, 세금으로 억대 연봉을 지원받고 있으면 소방차든 헬기든 타고 사고 현장을 찾아다니면서라도 환자를 데려다 치료해야죠. 소방헬기 요청해서 의료진이 올라타고 다니는 데는 거의 드물어요.”

 

-소방헬기 말고 따로 환자용 의료헬기도 도입했잖아요?

“전국에 6대 있죠. 보건복지부가 한 대당 1년에 30억원씩 리스비용 대주고 의사들 한번 탈 때마다 수당도 많이 줘요. 근데 야간엔 위험하다고 비행 안 하죠.”

 

-아까 오토바이 환자는 야간에 이송되어 왔잖아요.

“진짜로 위험해서 못 뜨는 건지 어쩐지 누구도 따져보려 하지 않아요. 아주대병원엔 닥터헬기가 배정이 안 돼서, 우린 소방헬기 타고 환자한테 달려가요. 소방헬기 타는 건 수당도 한 푼 없는데.”

 

-수당이 없어요? 일종의 응급 왕진인데.

“없어요. 오히려 각서까지 써요. ‘비행 중 어떠한 사고가 나도 재난안전본부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쓰인 서약서에 서명하고 타요. 우린 소방헬기 타고 가다 사망해도 국립묘지에도 못 가요. 소방대원이 아니니까. 뭐, 그런 건 어쨌든 상관없어요.”

 

-보험은 들어놓으셨어요?

“보험도 이런 건 커버 안 해줘요. 헬기 타다 어깨 부러졌을 때 보험사에서 연락도 안 왔어요.”

1년에 200번을 헬기로 환자를 이송하고, 정 위급할 땐 헬기 안에서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주무르며 저승의 문턱까지 간 환자의 생명을 구해낸 덕에 그의 외상센터는 예방가능 사망률을 9%대로 대폭 낮췄다. 그러는 사이, 이국종의 몸은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오른쪽 어깨는 세월호 사고 현장에 갔다가 부러졌고, 왼쪽 무릎은 헬기에서 뛰어내리다가 꺾여서 다쳤다. 왼쪽 눈이 거의 실명이 된 건 2년 전 직원건강검진에서 발견했다. 오른쪽 눈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발병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의사가 시력을 잃으면 어떡해요? 무슨 병이래요?

“망막혈관 폐쇄와 파열. 80대 당뇨병 환자가 걸리는 병이래요.(웃음) 수면 부족은 증상을 악화시킨다는데, 뭐 도리가 없어요. 어머니가 알고 슬퍼하셨어요. 아버지도 왼쪽 눈을 잃으셨는데, ‘그런 것까지 똑같이 닮냐?’고 하시면서….”

 

내가 버릴 수 없는 마지막 원칙

아버지는 한국전 직후 지뢰 파편이 망막에 박히면서 왼쪽 눈을 실명했다.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였지만 전쟁에 젊음을 바친 아버지는 마땅히 세상에 정착할 곳을 찾지 못했다.

 

-생존해 계신가요?

“2000년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대쪽 같은 분이셨어요. 국제공항 경리부에 어렵사리 자리를 얻었는데 사람들이 주차비 받아서 빼돌리는 걸 눈감아 주지 못하셨죠. 그 일 때문에 김해로 좌천되니까 더럽다고 때려치웠어요.”

 

-진짜 아버님을 빼닮으셨나 봐요.(웃음) 의사가 되겠단 생각은 언제부터 한 거예요?

“아버지가 국가유공자라서 노란색 의료카드가 있었어요. 그걸 갖고 병원에 가면 ‘왜 여기까지 왔냐?’고 노골적으로 눈치를 줬죠. 그때 동네에 ‘김학산 외과’라고 있었는데 그분은 절 냉대하지 않으셨어요. 본인부담금도 안 받으시고 오히려 제게 용돈을 주시곤 했어요. 어린 마음에 의사가 되면 돈도 벌고 좋은 일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외상외과 의사로 일한 지 15년인데, 그간 개인적으론 잃은 게 많으시죠?

“한국 사회 막장을 다 본 것 같아요. 내가 깜냥에 안 맞는 일을 벌여 우리 센터 동료들까지 사지로 끌고 들어가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무거워요.”

 

-이번 연휴에도 집에 못 들어가나요?

“이번 금요일부터 어마어마하게 환자들이 몰려들 거예요. 연휴가 제일 무서워요.”

 

-서른여섯 시간씩 밤새워서 근무를 하면 집엔 언제 가세요?

“같이 일하는 정경원 선생은 1년에 네 번밖에 집에 못 간 적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얼마나 버티시겠어요? 건강도 사생활도 희생해 가면서.

“안 돼요. 안 된다니까. 그걸 알지만 가망이 없어요. 고쳐질 수도 없고 제가 고칠 수도 없어요.”

올해는 사직자가 한 명 있고 정경원 선생도 미국 연수중이라 더욱 여유가 없다고 했다. 간혹 즐기던 밴드 활동도 접은 지 오래다.

 

-외상외과 의사 15년간 얻은 건 뭔가요?

“악명? 독불장군이다. 막간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선생님 덕에.

“…….”

그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침묵했다. 

 

-떠날 생각도 해보셨나요?

“수없이 했죠. 산업인력공단에서 사우디에 파견의사 보낸다고 할 때도 지원해서 뽑혔는데 국가적으로 그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면서 어그러졌어요.”

 

-그래 봤자 가난한 사람들 죽고 다치는 현장에서 크게 못 벗어나시는군요.(웃음)

“왜요. 레이저로 점 뽑는 것도 잘해요.(웃음) 하나 뽑는 덴 만원, 열세 개 뽑으면 십만원.”

 

-선생님 하시면 제가 빼러 갈게요.(웃음)

표정 없던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가슴엔 분노인지 허무인지 모를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 

 

-다시 여쭤도 될까요? 그간 얻은 게 뭔지?

“(잠시 침묵) 동료들이요. 바보처럼 순박하고 사심 없는 사람들. 집에도 못 가고 환자한테만 매달려온 정경원 선생, 캐나다 간호사 취업도 팽개친 김지영 선생, 지치지 않고 대안을 찾아보는 허윤정 전문위원, 위험한 일에 늘 앞장서는 소방헬기 파일럿들. 이성호, 이세형, 이인붕, 박정혁, 석회성 기장….”

이국종은 클립으로 곱게 묶어놓은 그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외롭고 막막할 때 그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뒤적여 보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의사로서의 원칙’은 뭐예요?

“의사고 뭐고, 그냥 직업인으로서의 원칙이라면… ‘진정성’이요. 진심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 인생을 돌이켜볼 때 정말 진정성 있게 일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새벽 4시5분, 그는 칼에 찔린 환자가 왔다는 콜을 받고 급히 일어났다. 그와 인사를 짧게 나누고 건물을 나섰다. 바깥은 짙은 어둠, 서늘한 바람이 이마를 스쳤지만 가슴은 여전히 먹먹하기만 했다.

 

나는 외상외과 의사였다. 그들을 살리는 것이 나의 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꾸 내 눈앞에서 죽어나갔다. 싸우면 싸울수록 내가 선 전장이 홀로 싸울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할 뿐이었다. 필요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이국종 비망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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