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께서 강세를 알린 성자상제님의 천명을 받은 최수운 대신사


상제님의 천명을 받은 최수운 대신사

 

 1 신교(神敎)는 본래 뭇 종교의 뿌리로 동방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 그 도맥(道脈)이 면면히 이어져 왔나니

 2 일찍이 최치원(崔致遠)이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 실로 삼교를 포함하여(包含三敎) 접하는 모든 생명을 감화시키는 것(接化群生)이라.” 하니라.

 3 그러나 조선을 비롯한 동양 각국이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폭압에 침몰당해 갈 무렵, 신교 또한 권위를 잃고 그 명맥이 희미해지거늘 

 4 하늘에서 동방의 이 땅에 이름 없는 한 구도자를 불러 세워 신교의 도맥을 계승하게 하고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새 세상이 열릴 것을 선언토록 하셨나니

 5 그가 곧 동학(東學)의 교조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대신사(大神師)니라.

 6 수운은 몰락한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고 세상을 두루 체험하며 한울님의 뜻을 깨닫고자 공부에 전념하더니

 7 이 때 도학자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奎)가 수운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선도(仙道)를 계승할 자라.” 하니라.

 8 을묘(乙卯 : 道紀前 16, 1855)년에 하루는 금강산 유점사의 한 중이 수운이 머물고 있는 울산(蔚山) 유곡(裕谷)에 찾아와 책 한 권을 전하매 3일 만에 그 뜻을 해득하니, 신교와 기도의 요체를 적은 책이더라.

 9 이로부터 뜻을 더욱 굳건히 하여 양산 천성산(千聖山)에서 49일을 기약하고 천주강령(天主降靈)의 기도를 드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매 참담한 심경으로 지내다가

 10 기미(己未 : 道紀前 12, 1859)년 10월에 다시 발심하여 용담정(龍潭亭)으로 들어가며 ‘천주를 친견하기 전에는 세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기도에 정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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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님의 성령 친견과 도통

 

 11 이듬해 그의 나이 37세 되는 경신(庚申 : 道紀前 11, 1860)년에 ‘도기장존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 세간중인부동귀(世間衆人不同歸)’라는 입춘시를 써 붙이고 매일 세 번씩 청수를 올리며 기도에 더욱 정진하더니

 12 드디어 4월 초닷샛날, 전율오한의 묘경 속에서 홀연 공중으로부터 들려오는 ‘선어(仙語)’에 천지가 진동하는 듯하거늘 정신이 아득하여 쉬이 수습하지 못하니라.

 13 천주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하시고

 14 “너에게 무궁무궁한 도법을 주노니 닦고 다듬어 수련하여 글을 지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케 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하시니라.

 15 이로써 수운이 인류의 새 세계를 알리라는 상제님의 천명과 신교를 받고 도통을 하였나니, 이것이 곧 우주사의 새 장을 열어 놓은 천주님과의 천상문답 사건이라.

 16 이 때 상제님으로부터 “주문(呪文)을 받으라.” 하는 말씀을 듣고 본주문 열석 자와 강령주문 여덟 자를 지으니 그 내용은 이러하니라.

 17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至氣今至 願爲大降

지기금지원위대강

 18 수운이 천명과 신교를 받들어 동학을 창도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경상도 일대에 동학이 널리 퍼지거늘

 19 그 급속한 전파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는 동학을 사도난정(邪道亂正)으로 규정하여 수운을 체포하니라.

 20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 2월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처형당할 때, 수운이 청수를 모시고 상제님께 기도를 올린 후 목이 베이니 그의 나이 41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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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님의 동방 땅 강세 선포

 

 21 수운이 아버지께 가는 생명의 길을 동방의 땅에 닦아 놓고 ‘인간으로 강세하시는 천주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 시대를 선언하였나니

 22 이는 온 인류에게 후천 개벽세계를 여시는 아버지의 대도, 곧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조선 땅에서 나올 것을 선포함이니라.

 23 그가 비록 상제님의 천명은 다 이루지 못하였으나 5년 동안 천주님의 동방 땅 조선 강세와 후천개벽으로 열리는 새 생명세계를 천하에 알렸나니 그 장엄한 인류구원의 외침은 바로 이러하니라.

 24  “한울님이 내 몸 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

 25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26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너는 또한 연천(年淺)해서 억조창생 많은 사람 

태평곡 격양가(擊壤歌)를 불구에 볼 것이니 

이 세상 무극대도 전지무궁 아닐런가.

 27  “어화 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 줄을 너희 어찌 알까 보냐.”

 28  “열석 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29  “무극대도 닦아 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30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증산도道典 1:8)

 

 

 

 8:2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

 8:5 최제우(崔濟愚, 1824∼1864). 본관 경주(慶州). 호는 수운. 현 경북 경주시 현곡면(見谷面) 가정리(柯亭里)에서 출생.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후예이다.

 8:11 입춘시. ‘도기를 항상 보존하면 삿된 기운이 침입하지 못하니 세간의 중인들과 함께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뜻.

 8:13 “曰 勿懼勿恐하라. 世人이 謂我上帝어늘 汝不知上帝耶아.” <『동경대전(東經大全)』 「포덕문(布德文)」>

 8:14 『동경대전』 「논학문(論學文)」

 8:20 장대. 군수(軍帥)가 올라서서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은 대. 당시에는 대구 아미산 아래 관덕당(觀德堂) 앞에 있었으나, 지금은 시가지가 들어섰다.

 8:20 목이 베이니. 이 때 형졸이 여러 번 칼을 내리쳤으나 목에 칼자국조차 나지 않자 수운이 형졸에게 “네 청수 일기(一器)를 내 앞에 놓으라.” 하여 청수 앞에 마지막 묵도(默禱)를 한 뒤 마침내 순도하였다. <『천도교백년약사』>

 8:21 수운의 이러한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이후 사인여천(事人如天), 양천주(養天主), 인내천(人乃天)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다가 마침내 범천론(汎天論)으로 크게 왜곡되었다.

 8:24∼30 『용담유사(龍潭遺詞)』

 8:30 개벽. 『용담유사』에 나오는 ‘개벽’은 상제님께서 말씀하시는 선·후천의 개벽과는 본질적으로 그 의미를 달리한다. ‘후천개벽’은 증산 상제님께서 처음으로 쓰신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