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씨름 위기와 문명개벽일본 우익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작성자: 상생동이님    작성일시: 작성일2019-05-08 23:41:14    조회: 1,540회    댓글: 0

 

일본 우익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내외신문 2019.5.4  


‘보수적·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 주도’
‘실질적인 행동세력·정치세력으로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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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분쟁이 수년째 끊이지 않고 계속 되고 있다. 영토 분쟁, 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등 일제 강점 이래로부터 연유한 문제부터, 최근의 이슈까지. 이러한 이슈의 배후, 혹은 전면에 항상 등장하는 문구가 있으니, 바로 일본 우익이다. 매스컴에서 흔히 이러한 역사분쟁의 배후와 그것이 일본 내에서 지지를 얻거나 정치세력화되는 상황의 원인으로 우경화를 꼽거나, 일본 우익 인사의 망언을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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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 단체 시위>
 

사회경제적인 불안을 원인으로 하는 우경화 현상을 넘어서, 끊임 없이 이러한 보수적·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주도하고, 실질적인 행동세력·정치세력으로서 존재하는 이 일본 우익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기원하며,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실체와 대안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사고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실체로서 작동하고 있는 일본 우익의 기원과 역사, 현황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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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우익의 정의

우익 혹은 우파는 정치적 성향 분포에서 좌익 또는 좌파에 반대되는 쪽으로, 일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온건한 개혁을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말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대칭되는 의미에서 보수주의, 반공주의, 민족주의 등이 우파로 간주된다.

프랑스 혁명 이후 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군주 중심의 국가관에서 민족, 시민 중심의 국가관이 확립되었으나,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으로 극단적으로 흐르게 되었다.

②일본의 우익

최근 넷우익(ネット右翼), ‘인터넷 기반으로 한 젊은 우익세력 대두’

우익은 다른 정치성향과 마찬가지로, 지역에 따라, 국가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가치관이 풍토에 맞게 바뀐다. 이탈리아에선 파시즘이, 독일에서 나치즘이 나타난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의 우익은 특이한 색깔을 띈다.

일본 우익의 사전적 의미는 한마디로 보수적 우파의 총칭을 말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우익’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민족파’, ‘애국자’, ‘국사(國士)’등으로 자칭하는 자들도 있다. 주로 민족주의, 배외주의, 국가지상주의의 입장에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단체로는 1997년 우익을 포함한 보수주의자 단체의 최대 조직으로서 결성된 ‘일본회의’가 있으며, 이 밖에도 ‘전일본애국자단체회의’, ‘전일본애국자단체연합·시국대책협의회’, ‘청년사상연구회’등이 있다.

오늘날 일본 우익의 구체적인 활동은 일본국헌법의 폐지와 대일본제국 헌법 체제의 부활, 북방영토의 탈환, 반공주의와 일교조(일본교직원노동조합)반대, 반노동조합, 남녀공동참획(한국의 남녀평등기본법) 사회비판 등과 같은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비롯해 친미와 반미에 관한 논의, 북한의 납치문제 등의 외교문제, 그리고 대동아전쟁 긍정과 도쿄재판 부정, 야스쿠니신사 참배지지, 학교에서의 국기계양·국가제창의 의무화와 같이 역사인식과 관련하여 민족주의와 배외주의를 강조하는 등의 다양한 방면에 걸쳐 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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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물론 모든 우익단체가 이러한 문제에 통일된 사상이나 행동을 보이는 건 아니며, 단체나 개인에 따라 현상에 대한 인식이나 당면 목표와 활동은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이들이 거의 유일하게 공통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천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며, 천황이나 황실에 대한 비판에는 극도로 민감하여 때로는 협박과 테러까지도 불사한다. 또한 매년 정월 황거(천황이 살고 있는 궁)에서의 신년참하(신년 초 천황에게 수만 명의 일본인이 몰려가 하례를 하는 것)는 우익들에게 중요한 연례행사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최근 넷우익(ネット右翼)이라 하여,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젊은 우익세력도 대두하고 있으며, “이들은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在日特権を許ない市民の会)”등을 결성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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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만에 설치된 위안부상 향해 발 뻗는 일본 우익인사 후지이 미쓰히코 [대만 홈페이지 캡처]


2) 일본 우익의 역사

①제국주의 시대(1895-1920년)


현재 우리에게 ‘우익’이라 불리는 세력들이 일본에서 ‘우익’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였던 것으로 고찰된다. 그들이 당시 ‘우익’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배경 하에서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성립된 사회주의 세력들은 1910년대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시켜 나갔다. 그 사회주의 운동 세력들이 1920년대의 초·중반 경에서부터는 ‘좌익’으로 불리게 되는데, 그 ‘좌익’ 세력들에 의해 행해진 사회주의 운동, 예컨대 노동 운동 등에 대해 대립적 입장을 취해 그들의 그러한 운동을 방해했던 세력들이 1920년대 말경서부터 출현하게 되었다. 당시 그러한 ‘좌익’ 세력들에 대항했던 세력들이 바로 ‘우익’으로 불렸던 것이다.

‘우익’으로 불리기 이전 그들은 ‘국가주의’세력들로 불렸다. 사회주의 운동을 방해하는 국가주의 세력이 형성되었던 것은 일본이 청·일 전쟁, 삼국 간섭, 러·일 전쟁, 한·일 합방 등과 같은 대륙 침략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일으키는 과정에서였다.

일본이 그러한 대륙 침략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일으키기 이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청·일 전쟁을 일으키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 세력들은 국권주의자들로 불렸다. 그런데, 국권주의자들이라 불리던 그들이 국가주의자들로 불리게 된 것은 일본이 청·일 전쟁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들과 대항해 가는 과정에서 일으켰던 대륙 침략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체험함으로써였다. 그들은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들과 대항해 가면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자신들의 최고의 생존수단이라고 하는 사상을 갖게 됐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일본이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들과의 투쟁을 통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일본 자신도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들의 경우처럼 식민지를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식민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등과 같은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전쟁을 통해 한국·중국 등을 소유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러시아와 대결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자 주전론主戰論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보다는 ‘사회’가 더 중요하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 세력들은 비전론非戰論의 입장을 취해 국가주의자들의 ‘주전론’에 대항했다.

청·일 전쟁에서 제1차 세계대전 사이 이상과 같이 국권주의, 국가주의자, 우익 등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갔던 인사들은 지역적으로는 주로 큐슈의 서북지역 출신들이고, 일본의 대륙 침략의 첨병 역할을 했던 대륙 낭인 출신들이었다. 그들이 대부분은 현양사, 흑룡회, 낭인회 등으로 이어지는 국가주의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고, 또 그들은 일본주의 운동, 동문동종 운동, 대외강경 운동, 대러 개전 운동, 한·일 합방 운동, 중국 혁명 운동, 만몽 독립 운동 등을 통해 국가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일본은 천황제라고 하는 정치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천황의 국가이지 국민들의 국가가 아니라고 하는 황도주의 사상이 존재했었다. 국가주의자들은 일본이 천황의 나라이고 일본인들이 천황의 신민이라고 하는 바로 그러한 황도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국가’보다는 ‘사회’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회주의자들은 국가주의자들의 그러한 사상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천황제에 대해 서로 대립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천황제를 지탱시켜 나가는 사상이라 할 수 있는 황도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그것을 실천해 가는 국가주의자들은 황도주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주의 세력들, 즉 좌익 세력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대외적으로 청·일 전쟁에서, 러·일 전쟁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들과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대립과정에서 탄생한 존재들이 국가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일본이 대륙 침략을 통해 제국주의 국가로 전환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익과 좌익으로 전환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 간의 근본적 차이는 그들이 천황제를 지탱하는 황도주의 사상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느냐에 있었다. 국가주의자들은 황도주의 사상을 철저히 받아들임으로써 우익으로 전환해 나갔고, 사회주의자들은 그 사상을 철저히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좌익으로 전화해 나갔다고 말할 수 있다.

②군국주의 시대(1920-1945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우익 세력들은 대전 후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확장이 차단되는 국제적 정세가 펼쳐지자 그전까지는 다른 차원에서 우익활동을 전개시켜 나갔다. 그때까지의 우익 활동은 정치, 경제, 외교 등을 추진해나가는 일본 정부의 자세에 대한 지적, 감시, 교정 등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대전 이후부터는 국가 국체의 존재 방식에까지 관여하게 된, 소위 ‘국가 혁신운동’의 형태로 전환해 나가게 됐다.

일본의 우익 활동이 그러한 양태로 전화해 나갔던 것은 크게 말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그동안의 유럽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로 전환해 나갔고, 자본주의 세계를 주도하게 된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 세력으로서의 일제의 새로운 경쟁 대상자로 부상해 일제의 제국주의 정책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러시아가 사회주의 국가로 전환해 나가서 일본에서의 천황제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정책을 반대하는 사회주의 세력들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제1차 세계대전 종료 후, 승전국들이 취한 베르사유 체제에 반발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 정부가 출현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제를 저지할 목적으로 취한 워싱턴 체제에 반기를 들었던 일본 정부가 영미의 편으로부터 벗어나가 그들과의 대립적 관계를 구축하는 독일·이탈리아 쪽으로 들어감으로써였다.

1920-30년대의 우익 단체들은 그 전년 대에 일본의 아시아 침략 활동의 일익을 담당했던 도야마 미쓰루의 ‘흑룡회’계열, 반사회주의·반노동 운동을 주도해 가던 반조합주의 계열의 히라누마 기이치로의 대일본국수회 계열, 국가주의 내지 국가사회주의 노선의 미쓰카와 가메타로의 노장회·유존사 계열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흑룡회’계열의 우익 단체들은 대륙 침략과 관련된 것들에 관여했고, ‘대일본국수회’계열은 좌익 세력들의 노동 운동을 저지시키는 일 등의 대내 문제에 관여했던 관변 단체들이었다. 노장회·유존사 계열은 국가 혁신 운동의 전개 등과 같은 국체의 문제에 관여했다. 이들 우익 단체들의 사상적 배경은 제국주의, 반사회주의, 국체 사상을 중핵으로 한 국가주의, 농본주의, 파시즘 등으로 고찰된다.

현재의 일의 우익 단체들은 1950년대 초, <미·일 강화 조약>의 체결을 전후해 성립된 것들이다. 당시 그것들은 전전의 우익 단체의 부활의 형태를 취해 성립된 것들로서 전전의 우익 단체란 바로 1920-30대에 성립된 것이었다. 이렇게 봤을 때, 현대 일본의 우익 단체들은 1920-30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현재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당시 형성된 역사적 상황들, 구체적으로 말해, 중국·북한 등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과 미국·한국 등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대립적 관계 등이 아직까지도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봤을 때, 일본의 우익은 제국주의, 반 사회주의, 국체 사상을 중핵으로 하는 국가주의 등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 확립되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넷우익(2000년대)

일본 우익단체들은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서술한 것처럼 제국주의, 반사회주의, 국체 사상을 중핵으로 하며 태평양전쟁 이후의 역사 인식과 세계 인식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일본 내부의 우경화 경향과 함께 인터넷 공간에서도 우익적 성향을 지니고 활동하는 이들이 대두했다. 이른바 넷우익(ネット右翼)이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기존의 우익세력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자민당은 애국보수 정당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한국, 중국, 북한 같은 인근 국가들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일본 내의 재일 한국인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있으며, 재일 일본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들은 재일 교포를 재일교포를 일본사회의 빈곤층 저변층 범죄자집단으로 보기도 하는 동시에, 일본 정치·경제·언론을 모두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파워를 가진 집단으로 보기도 하는 등 상당히 앞 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관점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일본 내의 우익 사상의 전통적 사상이나 세력에 기반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 위기로 인한 젊은층의 불안과 위기 의식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세력인 재일한국인들에게 적대감을 퍼붓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하는 의견이 다수이다. 이들의 세력의 기원과 활동 양상이 한국의 일베와 유사하다는 점도 역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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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
‘일본 우익의 실체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평화 고민’

세계적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일본 내부의 사회경제적 모순들이 심화되어 가고, 그에 따라 일본 내부의 우경화, 그에 따른 우익 세력의 발흥이 대두되고 있다. 살펴본 것처럼 일본 우익은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각 이슈의 내용이나, 동북아의 정치경제학적 역학관계를 고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끊임 없이 역사갈등을 만드는 일본 내부를 추동하는 세력이자 실체인 우익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일 간의 역사갈등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이성적인 반일감정이나 적대보다는 일본 우익의 실체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일간의, 그리고 동아시아 내부의 평화에 대해서 고민해야할 것이다.

조성화 기자

 

http://www.naewaynews.com/news/newsview.php?ncode=1065585902656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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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내각 접수한 극구 대본영 '일본회의' / YTN (2014.9.3) 

 

https://youtu.be/sAXWSZ5oJlM

 

 

 

 

 제국주의 일본의 역할


 1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올 농사에 어떤 종자를 심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니

 2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녹(祿)줄을 띠고 왔나니 일본 종자를 심으라.” 하시고

 3 “생계(生計)의 모든 일에 그들을 본받으라. 녹줄이 따라오느니라.” 하시니라.

 4 하루는 한 성도가 일본 사람을 ‘왜놈’이라 부르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5 “일해 주러 온 사람들을 그렇게 험하게 말하면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하리오. 

 6 일 보는 사람이니 왜놈이라 부르지 말고 ‘일본 사람’이라 부르라. 일인(日人)은 일꾼이라. 나의 일을 하나니 큰 머슴이 될 것이니라. 

 7 그러나 일꾼이 주인의 집을 빼앗으려 하므로 마침내는 크게 패망할 것이니 일본 사람은 나한테 품삯도 못 받는 일꾼이니라.” 하시니라.

 8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본은 깔담살이 머슴이요, 미국은 중머슴이요, 중국은 상머슴이니라.

 9 깔담살이가 들어가면 중머슴이 나와서 일하고, 중머슴이 들어가면 상머슴이 나오리라.” 하시니라.


 

  (증산도道典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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