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학과 영성시대현대물리학과 동양철학

작성자: 상생동이님    작성일시: 작성일2018-05-04 23:45:19    조회: 413회    댓글: 0

 

현대물리학과 동양철학

- 김용정 교수 (동국대 철학과) 

 

최근 우리들은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의 사유방법이 동양의 사유방법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양의 고전 물리학적 사고방법이나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방법은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주관과 객관을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로 전제하고 나 의 주관이 별개의 물질적 대상을 연구하고 인식하는 것으로 여겨 왔다. 사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나와 대상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는 보다 넓은 철학적 인식의 문제가 논의 돼야 하기 때문에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단지 현대 물리학이 바라보는 우주론이나 물질관이 동양의 종교나 철학과 사유방법에 있어서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물질과 공간은 상호의존적 통일체

 

먼저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허공이라는 공간적 장(場,field)과 공간에 존재하는 물질(에너지)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장과 물질은 둘인가 하나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 해야 할 점은 고도의 방정식이 요구 되는 현대 물리학을 일상언어로 설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이 따르겠지만, 앞으로 논의될 이야기들은 현대 물리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우선 상대성 이론에서 물체와 공간은 더 이상 분리시킬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무거운 물체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나 장이 형성될 것이고, 이 장은 그 자체가 물체를 둘러싸는 공간의 만곡(curvature)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물체는 그것의 중력장과 분리될 수 없고, 중력장은 굽어진 공간과 분리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물질과 공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상호 의존적인 하나의 통일체로 보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상대성이론으로 부터 물체란 강하게 응축된 에너지이며, 에너지는 곧 물질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물질과 에너지를 질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질량과 에너지의 구분은 질적인 구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상당한 부분은 물질속에 들어 있다.

 

그러나 상당히 적은 양이긴 하지만 그 입자를 둘러싸고 있는 장도 또한 에너지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물질은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모인 곳이고, 장은 에너지가 비교적 적게 모인 곳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물질과 장의 차이는 질적인 것이 아니라 양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물질과 장이 질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우리는 물질과 장이 명백하게 구분되는 표면을 생각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전기장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중되는데 '도(道)의 물리학'(필자가 번역한 '현대 물학과 동양사상'-Tao of Physics,범양사 출간)의 저자인 카프라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양자 전기역학의 두드러진 새로운 특징은 두 개념의 결합에 있다. 즉 전자기장의 개념과 전자기파가 입자적 측면으로 나타나는 광자(photon)의 개념과의 조화가 그것이다. 또한 광자는 전자기파이고 이 파는 진동하는 장이기 때문에 광자는 전기장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 할 것이다. 따라서 '양자장'(quantum field)은 곧 양자 내지 입자의 형태를 취할 수 있는 장인 것이다."

 

말하자면 전자와 같은 물질적인 입자도 중력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와일(Herman Weyle)이라는 물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물질에 관한 장이론에 따르면,전자와 같은 물질의 입자는, 비교적 커다란 장 에너지가(매우 작은 공간에 응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당한 정도의 힘을 가진 전기장 속의 작은 영역에 지나지 않은다. 결코 나머지의 장과 명백히 부분될 수 없는 그런 에너지의 덩어리는 호수의 표면을 가로지르는 물결처럼 빈공간을 퍼져 나간다. 따라서 전자를 이루는 실체가 언제나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 즉 물과 물결이 구분될 수 없는 것처럼." 현대 물리학의 장 이론은 양자나 전자와 같은 아원자적(亞原子的)인 입자뿐만 아니라 이러한 입자들 사이의 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수정하게 했다. 장은 공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디에서나 준재하는 연속체(continuum)이고, 입자적인 측면에서 보면 불연속적인 '알맹이 모양의'구조를 지닌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되는 두 개념은 결국동일한 실체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하나의 실체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정반대되는 두 개념은 언제나 역동적인 방법으로 일어난다. 즉 물질의 두 측면은 끊임없이 서로 다른 것(연속체와 불연속)으로 변화된는 것이다.

 

 

물질의 존재와 화동성은 서로 불리될 수 없다

 

월터 티링은 현대 물리학서 장에 대한 이상의 진술들을 다음과 같이 매우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대 이론 물리학은 ... 물질의 본질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다른 맥락에서 생각하게 했다. 즉 현대 이론 물리학은 볼 수 있는 입자에서 숨겨진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장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물질이 현존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서의 완전한 장의 상태를 흐트러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양자이론은 입자들이 한 알맹이의 분리된 물질이 아니라 분리할 수 없는 우주 그물(cosmic web)속에서 상호연결(interconnections) 내지 기능적 형태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원자적인 세계에서의 입자들은 단지 매우 빨리 돌며 움직인다는 점에서 역동적일 뿐만아니라, 그 입자들 자체가 하나의 과정들이라고 볼 수 있다. 물질의 존재와 그것의 활동성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것들은 다만 동일한 시공적(space-time)실체의 다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대 물리학에 있어서 물질적인 대상과 그것의 환경(時空) 사이의 상호연관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양자장 이론에서 근본적인 원리가 됐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관은 본래 동양의 세계관에서 더욱 근본적인 원리였다. 물론 동양 사상가들의 직관적인 세계관이 현대 물학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장)이론과 동일한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물리학자들이 양자 장이론을 통해서 아원자적인 세계를 설명하는 가운데 내재하는 상보적(相補的)인 세계관은 암묵리에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을 동일한 실체의 양면으로 보려는 동양의 직관적 세계관과 유사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카프라는 이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장이라는 개념이 나옴으로 해서, 물리학자들은 다양한 장들을 모든 물리적 현상을 통합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하나의 장으로 통일시키려고 시도해 왔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그러한 통일장을 탐구하는 데 그의 여생을 보냈다. 힌두교의 범(梵.Brahman), 불교의 법(法.Dhsrma Kaya), 도교의 도(道,Tao) 등은 아마도 물리학에서 연구하는 현상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현

 

상들의 근원적인 통일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상과 같은 물리학자들의 주장을 동양사상의 유기적인 역동적 세계상과 비교해 보기 위해서 간략하게 동양철학에 대해 살펴보자.

  

 

만물은 음과 양이 합한 기를 바탕으로 생성

 

이미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중국사상은 유교,불교,도교의 세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짧은 지면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충 성리학을 중심으로 노장사상 내지 불교와 연관시켜 요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도(道)는 일(一)을 낳고,일은 이(二)를 낳고, 이는 삼(三)을 낳고, 삼은 만물을 낳는다"고 했다. 이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무위지도(無爲之道)에서 만물이 생성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도는 자연 본래의 근원적인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자는 "도는 사람과 멀지 않은 것이니 사람이 도를 행한다 해도 사람을 멀리 하면 가히 도를 행한다 할 수 없다"고 해 도가 곧 인륜의 질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옛 중국의 철인들은 자연의 질서와 인륜의 질서를 모두 도라고 불렀던 것이다.

 

중국 철학에서 많이 거론되는 허(虛) 이(理) 기(氣) 성(性) 심(心)등과 같은 말들은 모두 도라는 말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중국의 성리학자 장횡거(張橫渠)는 태허(太虛)와 기로 우주를 설명했다. 즉 태허의 기가 모여서 만물이 되고 만물이 흩어져서 태허로 돌아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 곧 기의 장이며 따라서 기가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것을 알면 생성변화(神化)와 하늘의 법칙(性令)이 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기는 본래 허한 것어서 형체가 없으며 안과 밖이 없다. 형체가 있는 삼라만상이나 형체가 없는 허공이나 모두 기의 이합집산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도가 일(氣)을 낳고, 일이 이(陰陽)를 낳고, 이가 삼(陰陽의 화합체)를 낳고 삼이 만물을 낳는다"는 것은 결국 '만물은 음과 양이 화합한 기를 바탕으로 해 생겨난 것'을 의미한다.

 

노자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도덕경' 첫머리에서 "도는 영구 불변한 도가아니고, 이름지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다운 실재의 이름이 아니며, 무 는 천지의 시초요, 유는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다. 여기서 무는 결코 허무주의적인 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무와 유는 한 근원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름만 다를 뿐이고, 자연의 유현한 신비적 세계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의탁된 언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장횡거가 노자의 무를 비판하고 그의 허에다 태자를 붙여 태허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도 무가 허무의 무로 오해될 우려를 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좀더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성리대전' 정몽(正夢) 태화편(太和篇)에 보면 "태허가 있음으로써 천(天)이라는 이름이 있고, 기화(氣化)가 있음으로써 도라는 이름이 있고, 허와 기가 합함으로써 성(性)이라는 이름이 있으며, 성과 지각이 합함으로써 심(心)이라는 이름이 있다.(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 合虛與氣有性之名, 合性與知覺有心地名)"는 언명이 있는데, 여기서 태허가 천 도 성 심의 총체적 근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동양사상의 태허 태극 성 도 무 기 심 등은 서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음양의 관계는 별개의 둘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동양철학의 우주론과 인성론이 서양의 현대 물리학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통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몇편의 논문을 오래 전에 발표한 바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 논문들 가운데 몇군데를 추려서 지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사가인 조셉 니담은 '중국과학사'에서 "감촉할 수 있는 물질로 응축된 기(氣)는 어떤 중요한 의미에서 단순한 개별적인 것이 아니고, 세계의 모든 다른 대상들과 함께 서로 작용을 주고 받는 개별적인 대상인 바 결국에는 음(陰)과 양(陽)이라는 두 기본적인 힘의 율동적인 교체에 의존하는 파동이나 진동의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이것은 모든 만물이 동일한 유기적 상호 작용에 의해서 생성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의 첫머리에 "태극(太極)이 양의(兩儀, 즉 음양)을 낳는다"고 했는데, 노자의 경우는 도가 기를 통해 음양을 낳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음과 양은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음양의 관계는 그것이 결코 별개의 둘이 아니고 음속에 양이 있고 양속에 음이 있으며 음이 극한에 달하면 양이 되고 양이 극한에 달하면 음이 되는 동일자의 양면성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태극도설'의 창시자인 주렴계(周濂溪)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 말하고 "태극이 동(動)하여 양을 낳고 정(靜)하여 음을 낳는다"고 했다. '주역'에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해 음양의 상호작용이 곧 도라고 했다.

 

이상과 같은 중국사상의 세계관은 앞에서 설명한 현대 물리학의 세계상과 얼마나 유사성을 갖고 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중국의 신유학(新儒學) 즉 성리학의 성립에 큰 영향을 준 불교의 화엄사상(華嚴思想)을 이해함으로써 더욱 명백하게 설명될 수 있다.

 

 

첨단과학이론 초월하는 불교의 세계관

 

'화엄경'에 비로자나불(佛, Vairocana)이라는 일종의 법신불(法身佛)의 이름이 나온다. 이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본질을 의미하며 세계 모든 현상들은 바로 그 비로자나불의 화신(化身)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비로자나 법신불은 모든 현상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시시각각으로 유동, 변화하는 연기(緣起)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로자나불은 결코 어떤 고정적인 불변의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존재가 생겨나고 모든 현상들이 변화하는 한가운게서 역동적으로 작용 하는 원동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비로자나불이 수 억만의 사물들과 현상으로 변모하고 유동하는 산 생명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화엄경'에 여래성기(如來性起)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곧 비로자나 법신불과 관계 있는 말로서, 이 세계의 모든 생성 변화가 바로 이 여래, 즉 법신불의 성품에서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성기(性起)라 하는 것이다.

 

'화엄경'속에는 가느 곳마다 사물과 사물이 서로 대응하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모든 국토가 하나의 국토에 들어가고, 하나의 국토가 모든 국토에 들어간다(一切國土入一國土, 一國土入一切國土). 온 세계가 한 터럭 속에 들어가고 한 터럭이 온 세계에 들어가며, 일체중생의 몸이 한 몸 속에 들어가고 한 몸이 일체 중생의 몸속에 들어가며, 말할 수 없는 겁(劫)이 한 순간의 생각에 들어가고 한 순간의 생각이 말할 수 없는 겁에 들어가며,...모든 부처님법이 한 법에 들어가고 한 법이 모든 부처님 법에 들어가며 말할 수 없는 처소가 한 처소에 들어가고 한 처소가 말할 수 없는 처소에 들어가며,...모든생각이 한 생각에 들어가고 한생각이 모든 생각에 들어가며, 모든 음성이 한 음성에 들어가고 한 음성이 모든 음성에 들어가며, 일체 삼세(一切三世)가 일세(一世)에 들어가고 일세가 일체 삼세에 들어가니라." 이러한 상호관입의 사상은 오늘날 첨단과학의 기억소자(칩)나 분자 생물학에서 하나의 분자가 수십 만의 분자 내지 정보를 내포한다는 이론을 초월하는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세계가 다 들어가며 온 세계에 한 티끌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온 우주의 사사만물들이 서로 의존돼 상호관통하며 일종의 우주망을 짜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불교는 현상계를 공으로 묘사 하기도 한다. 현대 물리학의 아원자적 세계처럼, 불교에서 보는 현상계는 끊임 없는 생멸의 세계다. 무상(無常)한 세계에서는 어떤 영원한 동일성도 갖지 않는다. 이것은 특히 어떤 물질적 실체의 존재도 부정하고 각기 다른 연속적인 경험을 통해 아무 것도 상주(常住)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이른바 '제행무상 제법무아'(諸行無常 諸法無我)를 체득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종종 이 세계를 환상으로 비유하고 개별적인 것들을 파도와 물의 현상으로 비유한다. 즉 우리는 물이 위 아래로 출렁이는 것을 보면서 봉우리가 된 파도를 마치 물과 독립된 실체로 믿느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광속으로 달리는 입자들은 전우주에 영향 미쳐

 

물리학자들은 장이론(場理論)의 맥락에서 비슷한 유추를 사용한다. 즉 장이론에서 물질적 실체에 대한 환상은 운동하는 입자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 물리학에서 전자와 같은 물질 입자는 단지 일정한 정도의 힘을 가진 장 속에 하나의 전자장(電子場)의 파도의 봉우리가 생긴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에너지의 작은 봉우리는 마치 물결이 호수의 수면을 지나가듯이, 빈 공간(場)속을 진동하면서 퍼져 나간다. 따라서 우리가 전자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빈공간(즉 힘을 가진 전자장)의 파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현대의 소립자 물리학에서는 어떤 기본적인 실체적 원자나 입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비록 쿼크와 같은 실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복합입자를 의미한다. 질소원자에 알파선을 쬐면 그것이 산소원자와 수소원자로 변한다. 양성자가 중성자의 베타붕괴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하면 이 붕괴에서는 약한 상호작용과정에 의해 중성자가 전자와 반중성미자를 방출한다. 양성자와 중성와의 충돌에서 같은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중성의 중간자가 생성되는가 하면 두개의 중성자와 양중간자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성자나 중성자보다도 훨씬 질량이 큰 수십개의 수립자가 입자가속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힘은 입자를 산란 생성 소멸 변환시키는 상호작용인 것이다.

 

쉽게 만하면 거의 광속으로 달리는 입자들은, 하이젠베르크가 하나의 입자운동이 전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 것처럼 상호작용하면서 이것이 저것으로 되고 저것이 이것으로 되는 과정적 실재들인 것이다. 이 점이 특히 불교의 사사무애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서양 과학과 동양 철학 같은 사유선상에서 만나게 돼

 

장자는 그의 '제물론(齊勿論)'에서 "만물이 동일한 이(理,이치)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있다. 즉 그에 의하면 사물은 그 자체 속에 스스로 발생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 사물 속에는 고유한 특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것을 자연 또는 천연이라고 말하고 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때 시비(是非)가 구별되는 것은 달도(達道)에 이르지 못한 데 그 이유가 있으며, 도를 체득해 무심의 심경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사물간의 차별이나 대립은 사라지게 되며 만물은 제일(齊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진리는 하나라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며 중국사상과 불교는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다른 점이 있지만 유교나 불교 혹은 도교의 어느 것도 그 본원에 있어서는 동일한 유기적인 역동적 세계상으로 귀착하게 된다.

 

관자(官子)는 "천도(天道)는 공(空)하며 무형(無形)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중국철학에서는 공허하며 형체가 없으나 모든 현상들을 산출할 수 있는 도의 개념속에 현대 물리학의 장의 개념이 함축돼 있을 뿐만 아니라 기의 개념에서도 그것은 명백히 표시돼 있다. 이 용어는 중국 자연철학의 거의 대부분의 학파, 특히 송대의 성리학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학파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교 도교 불교의 종합을 꾀한 학파였다. 그리하여 동양적 견지에서는 현대 물리학의 견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주 안의 모든 것은 다른 것들과 관련돼 있어서 그 중 어느 부분도 근본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어떤 부분의 속성들도 어떤 근본적인 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분들의 속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편집자주:이말은 좀 수정을 해야할것같다.) 그러므로 카프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양의 사상가의 세계관은 모든 현상들의 상호 관련성과 자체 조화성을 강조하는 것에서 뿐만 아니라 물질의 근본적인 구성요소를 부인하는 것에서도 현대 물리학의 부츠스트랩 철학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불가분(不可分)의 전체이며 그 안에서 모든 현상들이 끊임 없이 변화하는 우주 안에는, 어떤 고정된 근본적인 실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동양사상에서는 일반적으로 물질의 '기본적 구성체'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없다." 서양의 과학은 자연의 탐구에, 동양의 철학은 인간의 완성에 그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의 발달은 결국 자연과 인간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게 했고, 그로 말미암아 서양의 과학과 동양의 철학은 같은 사유선상에서 만나게 됐다.

 

오늘날의 현대물리학의 주요 이론들과 모델들은 동양의 종교나 철학의 유기적이며 통일적인 세계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려주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현대의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오염에 의한 위기적 상황은 더욱더 동양사상의 전체적인 통일적 세계관 내지 자체 조화하는 사상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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