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수행지두 크리슈나무르티 - 죽음에 대하여

작성자: 상생동이님    작성일시: 작성일2018-09-10 23:28:02    조회: 265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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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 크리슈나무르티 - 죽음에 대하여

 

죽음은 신비로운 것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정화작용이기도 하다. 반복적인 패턴 속에서 지속되는 모든 것은 타락한다. 그 패턴은 나라나 기후 환경 등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패턴인 것이다. 어떤 하나의 패턴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지속성을 낳고 그 지속성은 인간을 타락 시키는 과정의 일부분이 된다. 지속성에 대한 종식이 있을 때, 새로운 어떤 것이 발생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사고와 공포, 사랑과 미움 등의 전체적인 운동을 이해했다면, 그 사람은 이 같은 사실을 즉각 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그는 죽음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즉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러한 질문을 받게 되면 사고에 의한 수많은 답변들을 준비한다. 사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음에 대한 모든 비극적인 설명들을 조사하고 싶지 않다.”모든 인간은 각자 자신의 조건이나 욕구, 희망등에 따라서 자기 나름대로의 해답을 가지고 있다. 그 해답이란 거의 예외 없이 사고에 의해서 결합된 지적인 것으로서 언어의 형태를 띤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히 신비하고 새로운 어떤 것을 조사 해야만 죽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사람들은 유기적 조직체인 육체가 죽으면 두뇌 (이것은 살아가는 동안에 자기 탐닉이나 자기모순, 헛도니 노력, 끊임 없는 투쟁 등의 다양한 형태로 잘못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스스로 기계적인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또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두뇌는 경험으로서의 기억과 지식으로서의 기억의 보관소이다. 두뇌의 세포들 속에 기억으로 저장된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사고가 일어난다. 한 유기체가 죽게 되면 두뇌역시 동작을 멈추게 되며, 그에 따라서 사고도 끝나게 된다. 

  

사고는 물질적인 과정이며, 결코 영속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뇌의 세포들 속에 간직 된 기억에 근거를 둔 일종의 물질적인 과정이다. 그러므로 유기체가 죽으면 사고도 죽는다. 사고는 ‘나’의 전체 구조를 창조한다.그 ‘나’는 이것을 바라거나 저것을 바라지 않거나, 두려움을 느끼고, 근심하고, 낙담을 하고, 무언가를 바라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사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도 어리석고 불행하게 살고 있다면, 투쟁하고 경험하고 획득한 인간에게 삶의 종말이 온다면, 그가 살아 온 인생이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잇겠는가?” 그러면 사고는 대답한다. “어나, 이것은 절대 끝이 아니야. 분명히 또 다른 세계가 있어.” 그러나 그 다른 세계도 여전히 사고의 움직임일 따름이다. 

  

사람들은 흔히 죽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묻는다. 이제 매우 다른 질문을 해보라. 죽음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죽음 이후가 아니다. 죽음 잎에 존재하는 것은 곧 한 사람의 인생이다. 무엇이 한 사람의 인생인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을 거쳐 직장을 얻고 가정을 이룬다. 남자는 근 50여년 간을 직장에 다니고 여자는 더 많은 재산을 늘리려고 분주히 다닌다. 그들은 자녀와 함께 고통과 근심도 가지고 있다. 그처럼 불행한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그들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고 싶어한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책들이 쓰여졌다. 그 모든 것들은 사고에 의해 산출되었으며 한결같이 ‘믿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실제로 완전히 던져 버린다면 그가 직면하는 것은 무엇이 될 것인가? 사고가 결합시킨 자아가 끝나게 되는 사실과 그는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든 근심과 열망도 막을 내리게 된다. 사람이 지금 살고 있는 모습과 마찬가지로 활력과 에너지, 그리고 수고로운 인생사를 안고 살아갈 때, 과연 항상 죽음과 만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나는 왕성한 정력과 능력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 죽음이란 그러한 삶에 대한 종결을 뜻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죽음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내가 너에게 집착하고 있는데 그 집착을 끝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뜻이다. 

  

어떤 탐욕스러운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죽을 때 탐욕을 가져갈 수 없다. 그러니 탐욕을 버려야 한다. 일주일 이나 열흘 이내가 아니다. 바로 지금 당장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활력과 에너지와 능력과 관찰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며 지상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 모든 것의 순간적인 종말, 곧 죽음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 이전의 삶은 죽음과 함께하는 삶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시간을 초월한 세계에 살고 있음을 뜻한다. 

  

사람은 자신이 얻는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없어지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삶에는 항상 극심한 운동이 존재하며 그에 따라 사람도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는다. 이것은 개념이 아니다. 

  

사람이 죽음을 초대할 때, 이것은 자신이 붙들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종결이고 죽음이며 그러한 죽음은 매 분마다. 매 초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그는 우리가 시간이라고 알고 있는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 무시간적 차원의 상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것을 보는 자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에 담긴 모든 내용물이 비워져서 시간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을 뜻한다. 곧 시간이 끝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짜 죽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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