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탐구동양고전에 묻다 ① ‘웰빙’과 ‘웰다잉’, 그 참뜻은


[책과 지식] 동양고전에 묻다 ① ‘웰빙’과 ‘웰다잉’, 그 참뜻은


[중앙일보] 201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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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가 답하다


성공 집착은 불안을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아라


공자 - “아침에 제 갈 길 알았다면 저녁에 죽게 돼도 괜찮다”

배우고 익히는 기쁨 말하고 남에게 흔들리지 않는 자세 제시

장자 - 창공을 나는 대붕(大鵬) 되려면 처절한 곤(鯤)의 수고 알아야

고단한 삶 감당하는 사람만이 “이제 죽어도 좋다” 하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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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논어』 『맹자』 등 동양고전에 관심이 높습니다. 고전 강독도 인기입니다. 혼잡한 사회에서 자신을 찾아보려는 시도입니다. 


중앙일보와 플라톤 아카데미가 ‘동양고전에 묻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웰빙·힐링·소통 등 우리 사회의 화두를 살펴봅니다. 국내 고전 전문가들이 함께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경쟁과 불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경쟁보다 불안이 사람의 영혼을 더 깊게 뒤흔든다. 경쟁에 놓인 사람은 힘겹지만 불안을 밀어내고 살아남도록 자신의 역량을 최적으로 꾸려 대응하려고 한다. 우리는 공자의 웰빙과 웰다잉을 ‘최적의 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바란다. 그 세상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지표로 작용한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부국강병을 국가를 조직하는 원리로 내걸었다. 공자는 부국강병의 경쟁이 궁극의 평화가 아니라 더 큰 불안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그는 사회를 부국강병의 길과 다르게 조직해 웰빙과 웰다잉이 가능한 올바른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논어』에 다음 같은 글귀가 있다. “경제적 성공을, 만약 추구하는 것이 옳다면 시장에서 채찍을 잡는 문지기라도 나는 꼭 할 것이다. 그것을 추구해서 안 된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아가리라.” 시대가 사익의 추구로 나아갔지만 공자는 그 길이 부도덕하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삶을 사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스스로 진정으로 바라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 삶을 조직하는 원리를 진정성에 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공자는 그 진정성을 『논어』의 처음과 마지막 장에서 분명히 말했다. “배우고 때에 맞춰 몸에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친구가 먼 곳에서 나를 찾아준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군자는 배움을 통해 무지와 서투름을 벗어나고 타자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자율적 인간이다.


 “하늘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지.” 배움이 사람에게 더 많은 자유로 향해 비상하는 날개를 달아주지만 하늘의 명령은 사람이 어디까지 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분명하게 해준다. 한계 안의 비상은 삶에 슬픔보다 즐거움을, 불신보다 신뢰를 가져올 수 있다.


 공자는 진정성과 호학(好學)을 밀어붙이는 자유로운 삶을 웰빙으로 보았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움직이는 향원(鄕愿), 겉으로 단단한 척하지만 속은 물러터진 소인,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공동체를 외면하는 은자의 삶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 허영·이익·생명에 갇혀 자신을 과밀하게 조직하거나 당파에 과잉으로 충실하거나 자신을 과소하게 조직했다고 보았다. 특히 은자는 세계 안에 머물면서 세계 밖을 꿈꾸는 역설과 환상의 삶을 살았다. 결국 이들은 개인과 개인들의 사이를 제대로 조직화할 수 없었던 만큼 웰빙과 웰다잉에서 멀어졌다.


 공자는 신의 구원과 사후 심판이 없는 현세 중심의 세계를 살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양생과 불로를 추구했던 진시황처럼 죽음을 뛰어넘거나 뒤로 물리려고 하지 않았다. “아침에 제 갈 길을 알아차렸다면 저녁에 죽게 되더라도 괜찮다.” 죽음은 넘어서고자 하지만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이 진정으로 바라는 길을 걸어갈 때 수시로 갈마드는 쉼표일 뿐이다. 목숨을 구걸하여 죽음을 뒤로 물린다면 죽은 목숨을 사는 잉여로서 삶일 뿐이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다. 웰다잉은 죽음을 의식하지도 압도당하지도 않고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고 진정으로 바라는 삶을 끝까지 사는 삶에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한 주제에 깊이 열중하다 보면 밥도 잊어버리고, 나아가는 길에 즐거워하며 삶의 시름마저 잊어버려서 앞으로 황혼이 찾아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공자는 삶과 죽음의 단절 없이 영원한 젊음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신정근 교수(성균관대·유학동양학부)


◆논어(論語)=중국 유교의 근본문헌. 전국시대 사상가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문답 위주로 구성됐다. 공자의 발언과 행적,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함축돼 있다. 총 20편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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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답하다


세상에 절대자유는 없다

자신을 다 던지는 노력뿐

 

강신주


구만리 창공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대붕(大鵬·하루에 구만리를 난다고 알려진 상상의 새)이 되고 싶은가.


 장자(莊子)를 연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적인 자유로움을 연상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대붕이 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수 천리나 되는 등판 길이를 가진 대붕으로 자랄 때까지 얼마나 비좁은 바다에서 부대꼈는지, 그리고 구만리 창공으로 비약하기 위해 태풍을 얼마나 절절하게 기다렸는지,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는다.


 그렇다. 대붕은 절대적인 자유가 아니라, 상대적인 자유를 상징했던 캐릭터였다. 수직으로 모든 것을 빨아올리는 태풍을 제대로 타지 못한다면, 대붕은 구만리 하늘을 자유롭게 날면서 자신이 태어나서 자랐던 바다를 내려다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태풍을 타고 하늘로 올라 이제야 거대한 날갯짓을 하게 된 순간, 이제 대붕이 되어버린 곤은 외쳤을 것이다. “아! 이제 죽어도 좋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조리 실현하는 순간, 혹은 조심스럽게 품었던 꿈을 실현하는 순간, 어쩌면 자신의 의지를 현실에 꺾이지 않고 관철하는 순간, 누구나 한 마리의 대붕이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이제 죽어도 좋다!”라는 탄식 속에서 우리의 삶과 죽음은 하나로 응축되며, 우리는 한 마리의 대붕이 되는 것이다. 이제야 ‘대종사(大宗師)’편에 등장하는 장자의 말을 이해할 준비가 된 듯하다.


 “저 대지가 몸을 주어 나를 싣고, 삶을 주어 나를 수고하도록 하고, 늙음을 주어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을 긍정해야 자신의 죽음을 긍정할 수 있는 법이다.”


사실 곤은 대붕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대붕은 다시 구만리를 활공하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시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은 편할 수가 없다. 삶은 자신의 가능성을, 그래서 자신의 자유를 증명해야만 하는 고난에 찬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고스러울 수밖에. 그래서 “아! 이제 죽어도 좋다”는 외침은 한번뿐이 아니라 수 차례 토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삶의 수고를 감당하는 사람, 그래서 “이제 죽어도 좋다”는 절정에 오르려는 사람에게만 늙음과 죽음은 안식의 시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안식(安息)이란 말이 중요하다. 편안하게 쉬는 시간을 의미한다. 더 이상 수고롭지 않을 수 있는 죽음의 시간은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위로가 되는 시간이겠는가.


장자는 말한다. “자신의 삶을 긍정해야 자신의 죽음도 긍정할 수 있는 법”이라고 말이다. 제대로 삶을 살았다면, 임종을 앞둔 우리는 자신에게 속삭이게 될 것이다. “수고스러웠지만 멋진 삶을 살았네. 좋은 여행이었어.”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가족이나 친구들은 머리나 손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보낼 것이다. “지금까지 고생하셨어요. 후회 없이 사신 거에요. 이제 푹 쉬세요”라고.

 

이와 반대로 삶의 수고스러움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던 사람은 임종을 거대한 슬픔으로 느끼게 된다.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2000여 년 전 천지를 진동시켰던 대붕의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가. 이제 대붕의 거대한 날갯짓이 전달하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가. 그 소리와 바람 속에서 장자는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삶을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시간으로 영위하라! 바로 그 순간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안식의 시간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강신주 대중철학자


◆장자(莊子)= 중국 고대 사상가 장자(莊子·莊周)의 저서. 노자(老子)의 『도덕경』과 함께 중국 도가사상을 대변한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어떠한 것에도 침해 받지 않는 자유를 주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