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종교의 정체수천년간 쉬쉬해 온 성서의 숨겨진 사실들

작성자: 상생동이님    작성일시: 작성일2018-05-05 00:00:17    조회: 388회    댓글: 0

수천년간 쉬쉬해 온 성서의 숨겨진 사실들


201312_155.jpg성경의 구약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희랍과 중근동 민족신화에서부터 왔다! 19세기 후반부터 근 150년 이상 발굴되고 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유물들을 평생 연구해온 민희식 박사의 주장이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근동지역 주민들에게 해당되는 설화일 뿐,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의 신화에서 차용되어 편집된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구약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그 원전이 되는 수메르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신화와 전승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구약성서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살아 있는지 규명해나간다.‘ 성서가 허구이다’라는 생각보다‘ 성서의 원형이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의문으로 이 책을 읽길 바란다(이하 본문내용 발췌).
 

창세기의 기원-수메르의 천지창조 신화가 원형

수메르의 창세기가 구약 창세기 창조신화의 원전이다 근대에 들어 고고학 발굴로 수메르 지역에서 방대한 사료들이 쏟아져 나오자 수메르인들의 역사, 문화, 신화, 문학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수메르 문화가 헤브라이즘의 모태였음이 입증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에서의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모세의 율법, 욥기의 비극, 시문학 등이 모두 수메르의 신화에서 대대적으로 차용되었음이 밝혀졌다. 구약성서의 발원은 수메르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이 오늘날 성서고고학계의 정설이다. 수메르의 창조신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니푸르에서 발굴된 점토판 문서로‘ 에리두 창세기’라 불린다.

흙으로 인간을 만드는 신화는 수메르·이집트·그리스에서 인간 창조신화는 수메르 이집트 그리스신화를 거쳐 기원전 4세기경에 이르러서야 구약성서에서 아담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바다의 신 남무와 출산의 신 닌마가 바다에 떠 있는 진흙을 가지고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만들었다. (에리두 창세기)
*진흙에 반란 주동자 신의 피를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 (바빌로니아 창세기)
*크눔 신이 나일강의 진흙으로 인간의 형체를 만들자 헤케트 여신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집트 신화)
*프로메테우스가 흙을 반죽하여 신의 형상을 따서 인간을 만들자 아테나 여신이 코로 생명을 불어 넣었다. (그리스신화)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22)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로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된지라. (구약 창세기) 


수메르인의 이상향과 그리스신화가 에덴신화의 원전이다 ‘에덴’이라는 말은 수메르어 ‘에딘’에서 기원하였다. 에덴동산이란 낙원에 대한 개념은 수메르의 이상향‘ 딜문’에서 왔다. 본래 에덴은 성서에서 말하듯이 지상낙원이 아니라, 초기 신화시대의 수메르의 신들 또는 신적 존재들이 먹을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끌려온 인간들이 노동하던 기름진 농경지였을 뿐이다. 실제 신들의 지상낙원은 딜문이었다. 구약 창세기에는 이 수메르의 신화가 그대로 흘러들어가 성서에서도 여호와 신이 아담을 정원지기라고 부르고 있다.
 

여호와 신-에블라왕국의 천신

창세기에 나오는 신은 왜 이름과 단·복수형이 다른가? 첫째, 창세기가 서로 다른 전승자료가 뒤섞여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사제전승에서는 엘로힘이 우주 전체의 절대신으로서 천지창조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메소포타미아 창세신화의 딩기르(신)들이 수용된(모방)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둘째, 일신교인 유대교는 주변의 다신교와 대항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의 천사 개념을 수용해야만 했다. 유대민족이 가나안을 침략하기 전 그곳에는 풍요로운 농토가 있었고 선주농경민족인 가나안 사람들이 바알(주님)신을 믿고 있었다. 바알은 태양을 상징하는 절대신이었으며 친척 신이 많았기 때문에 태양신을 중심으로 하는 다신교가 되었다. 여호와 신이 바알신과 그와 합세한 친척신들에게 세가 밀리자 메소포타미아의 천사들을 수용하여 그들에 대항하려 하였다. 이 결과로 여호와 신과 천사들을 모두 ‘우리’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노아의 홍수-길가메쉬 서사시가 풀어준 비밀

아담의 10세손이자 라멕의 아들인 노아가 600세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 신은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고 홍수를 일으켜 인류는 물론 세상의 모든 생물까지 멸망시키기로 하였다. 1849년 아시리아의 고도 니네베의 유적에서 노아의 홍수설화의 원전이 되는 메소포타미아 홍수신화의 점토판 문서가 발견되었다. 그 내용이 판독되었을 때 기독교계는 엄청난 충격파에 흔들렸다.

메소포타미아의 홍수설화가 노아의 홍수설화의 원전이다 수메르의 에리두 창세기는 바빌로니아의 대홍수 신화로, 다시 길가메쉬 서사시로 이어지면서 구약성서의 편집자들에 의해 노아의 홍수설화로 각색된 것이다.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몰살시키는 엘릴 신은 여호와 신으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사람 우트나피시팀은 노아로, 7일 밤낮은 40일 밤낮으로, 방주는 니무쉬산 꼭대기에 머물렀다로, 홍수가 끝나고 육지가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까마귀를 날려 보내는 내용은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내용으로, 제물은 번개를 바치는 것으로 번안하였을 뿐이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실제로 있었던 대홍수 이야기가 노아시대의 홍수이야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노아의 홍수설화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히브리판인 것이다.
 

바벨탑-혼란의 시대

수메르의 언어분열 전승이 바벨탑 이야기의 원전이다 “지구상의 인간들은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며 한가지 언어만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자신들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신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하늘에 닿을 놓은 탑을 쌓기 시작하면서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몹시 강한 바람이 불어와 탑을 무너뜨렸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는데 신은 이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함으로써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벌을 내렸다. 그 결과 사람들의 언어가 달라지고 서로 다른 민족으로 나뉘어졌다.”(바벨탑 이전의 수메르 전승신화) 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이 건설되기 이전에 이미 바빌론에는 언어와 민족이 나눠지는 수메르 신화가 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약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는 히브리인들이 구약성서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수메르와 바빌론의 전승을 바벨탑 이야기로 바꾼 채 거의 그대로 창세기에 옮겨 실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시대-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아브라함 일족이 가나안으로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아브라함 일족이 고향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내용은 창세기에 있어서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신이 왜 아브라함을 선택하였는지, 왜 비옥한 고향 우르를 버려두고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였는지, 왜 아브라함은 한번도 접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여호와 신의 지시에 따랐는지 등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다.

신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신을 선택하였다 아브라함은 과연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인가? 여호와 신이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사라를 통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가나안으로 이끌었다고 성서는 말한다. 그러나 그가 가나안에 당도하였을 때 그에게 닥친 현실은 정반대였다. 여호와 신은 그에게 약속한 가나안의 땅도 주지 못하였으며 사라를 통해 많은 자손을 얻게 하지도 못하였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신의 계시를 듣고 고향 우르를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결정으로 가나안으로 떠났을 뿐이었다. 비옥한 우르에서 신봉하던 농경민족의 여러 신들은 황량하고 단조로운 사막지역에서 단하나의 유목민족의 신으로 대체된다. 그들의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들의 기도는 더 간절해지고 그럴수록 여호와 신에 대한 믿음은 더 커지고 체계화된다. 여호와 신이 사막 유목민에게 알맞은 신으로 선택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아브라함이 신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유화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신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신을 선택한 것이다.
 

족장시대-아브라함·이삭·야곱

아브라함과 함께 우르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의 무리는 가나안에 정착하여 부족을 형성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처 사라가 늦게까지 아이를 낳지 못하였듯이 이삭의 처 리브가(레베카) 역시 오랫동안 아이가 없다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는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했으나이 위기를 안 레베카는 야곱을 자기의 친정으로 도망치게 한다. 야곱은 숙부 라반의 집에 가서 일하며 그 대가로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부인으로 맞이한다. 20년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새도록 신과 씨름을 하여 이기고 신에게서 이스라엘Israel (엘신과 싸워서 이긴 자)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나라 이름이지만 원래는 야곱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히브리의 쌍둥이 에서와 야곱 이야기의 원전이 그리스의 쌍둥이신화(아크리시오스와 프로이토스 신화)다. 쌍둥이가 모태에서부터 싸우는 대목, 왕권과장자권을 놓고 싸우는 대목, 차남의 도피행각, 귀향하여 계승하는 대목 등 두 신화의 공통점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또 에서와 야곱의 차자상속신화는 히브리 민족의 영토확장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론적 토대이자 민족이념교육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에서로 상징되는 장자의 개념은 가나안의 토착 원주민세력을, 야곱으로 상징되는 차자는 우르(오늘날의 이라크)에서 이주해 온 아브라함의 부족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권을 장자 에서로, 이스라엘을 차자 야곱으로 보는 것으로 대체된다.
 

족장 요셉

요셉 이야기는 구약성서 창세기의 4분이 1을 차지하는 긴 내용이다. 요셉은 아브라함의 증손이다.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는 4명의 부인과 열두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요셉은 두번째 부인 라헬의 소생으로 열한번째 아들이다. 야곱은 요셉을 특히 귀여워하여 그를 후계자로 삼고자 하였다. 그 때문에 형들이 시기하여 이미 앞서 말한 것처럼 유다가 중심이 되어 형제들이 그를 지나가는 애굽(이집트)상인에게 팔아버린다. 그런데 이집트의 두 형제 이야기와 그리스 벨레로폰 신화가 요셉 유혹 설화의 원전으로 알려져 있다. 두 형제 이야기와 비교하여 보면 등장인물만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형제 이야기】 젊고 성실한 동생 안푸-형수가 유혹-거절함-거짓으로 고함-곤경에 빠짐
【요셉 유혹 설화】 젊고 성실한 요셉-주인의 아내가 유혹-거절함-거짓으로 고함-감옥에 갇힘

 

출애굽기-기상변화가 몰고 온 전염병과 사회혼란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사료의 조사와 검증연구의 결과, 고대 이집트에 히브리인이 집단으로 살다가 탈출한 기록은 없다고 공식으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출애굽기(이집트 탈출기)를 역사로 고집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신화를 신화가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 깨이지 못한 고대인들의 사고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해내려 온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포기하고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무지의 상태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아카드 왕 사르곤의 출생신화가 모세 출생신화의 원전이며, 함무라비 법전이 모세 십계명의 원전이다.
 

사사시대士師時代

구약성서에 의하면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가나안을 침공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390~1050년 경이다. 그들이 처음 점령한 곳은 예루살렘 북동쪽 24㎞에 위치한 ‘여리고’이다. 그곳은 요단강 계곡에 있는 성읍으로 땅이 비옥하여 농산물이 풍부하였다. 여리고 점령을 기점으로 여호수아는 가나안 일대를 정복하게 된다. 그들은 토착민족을 몰아낸 후 제사를 담당하는 레위 지파를 제외한 12지파가 정복한 땅을 나누어 갖는다. 그렇다면 진정 이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을 완전히 지배한 것일까? 사사시대士師時代는 족장지배에서 왕정이라는 강력한 통치체제로 옮겨가는 과도기로 대략 기원전 1390~1050년까지로 잡는다. 각 부족별로 느슨한 지파 동맹의 형태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왕국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각 지파 사이에 전승되어 온 사사이야기를 기원전 6세기 이후 여러 명의 저자에 의해 편집된 것이다.
 

히브리 왕국의 번영

이스라엘 12부족은 가나안에 터를 닦은 후 지속적인 팽창정책으로 주변민족들을 말살시켰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을 정복 목표로 삼고 토착 민족들을 계속 살육해 나갔다. 마침내 블레셋(팔레스타인)인들은 영토를 빼앗고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맞서 강력한 철제무기로 무장하고 우수한 전략을 펼쳐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이스라엘의 심장부를 공격하였다. 이스라엘 군대는 계약의 궤를 전쟁터로 운반하였다. 그들은 계약의 궤가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하였다는 전설을 사실로 믿는 우를 범하였다. 전지전능한 여호와 신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도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도 못하였다. 이스라엘 군대는 처참하게 전멸하였다. 계약의 궤를 지키던 선지자 엘리의 아들들은 모두 살육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뒤로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계약의 궤는 블레셋(팔레스타인)인에게 노획되어 바알신전에 전리품으로 바쳐졌다.

이로써 약 200년간 존속되었던 이스라엘 12부족 동맹은 붕괴되었다. 그런 가운데 엘리의 뒤를 이어 선지자 사무엘이 등장하고,
그는 블레셋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터져나온 백성들의 왕정 요구에 부응하여 베냐민 족속의 청년 사울Saul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앉히게 된다. 이어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왕과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 왕의 시대가 이어지는데, 이스라엘의 전역에서 수세기 동안 행해져 온 유적지 발굴에서도 솔로몬 왕에 대한 성서의 기록을 뒷받침 할 어떠한 고고학적 발견도 없었다. 그들은 솔로몬이 건설하였다는 성과 성벽도 사실은 솔로몬의 시대 이전에 이미 지어진 것임을 밝혀냈다. 그들의 발굴로 다윗과 솔로몬 왕의 시대라고 하는 것도 다만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성읍에 한정된 지역왕조에 불과하였음을 밝혀냈다.
 

남북왕국의 멸망과 이산離散

기원전 1000년에서 950년경에 걸친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로 일컬어진다. 남쪽 유다왕국의 다윗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합병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이를 계승하였으나, 솔로몬 왕이 죽자 이 통일왕국은 70년 만에 다시 나뉘어졌다. 그 후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에 의해 멸망하였다. 남왕국 유다는 기원전 605년 신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제 1차 바빌로니아 유수幽囚(잡아 가둠)가 발생하여 만 명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그 후 바빌로니아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자 제2차 바빌로니아의 유수가 일어나고 대부분의 주민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제국의 왕 고레스(카루스2세)가 칼데아의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면서 유대인은 다시 귀환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대인이 거주하던 팔레스티나를 점령하여 그리스의 한 주로 편입시켰다. 이후 이집트와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며 기원전 63년 로마가 쳐들어와 이때부터 유대민족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약 2000년에 걸쳐 유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리/김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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