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맥李陌의 태백일사太白逸史(2) 환국본기

작성자: 상생동이님    작성일시: 작성일2018-05-07 14:37:50    조회: 2,316회    댓글: 0

이맥李陌의 태백일사太白逸史(2) 환국본기

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

 

「환국본기」는 어떻게 구성되었나

환국이란 환인의 나라를 말한다. 『삼국유사』에는 환인이 하늘에 계시면서 아들 환웅을 지상에 내려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태백일사』에는 환인이 직접 지상에 내려오셔서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삼국유사』의 환인桓因이란 글씨는 원본이 없는 상태에서 일제가 일본으로 가져가서 환국桓L이란 글씨를 환인桓因으로 고친 것이라 하였었다. 즉 나라 국L자를 그와 비슷한 인할 인因자로 개찬改竄한 것이라고 했었던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환국은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지상에 있었던 지상천국이었던 것이다. 

이맥의 『태백일사』는 「삼신오제본기」를 제일 앞에 싣고 그 다음에 「환국본기」와 「신시본기」를 싣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삼신오제본기」를 총론으로 삼고 「환국본기」와 「신시본기」를 각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삼신오제본기」는 환국시대와 신시시대를 다 아우른 것이며 「환국본기」와 「신시본기」는 이를 둘로 나눈 것이다. 

또한 인용된 사료를 비교하여 보면, 「삼신오제본기」에서는 『표훈천사表訓天詞』, 『대변경大辯經』, 『고려팔관기高麗八關記』, 『오제설五帝說』 등을 인용하였고, 「환국본기」에서는 『조대기朝代記』와 『삼성밀기三聖密記』 등이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신시본기」에서는 『대변경大辯經』, 『삼한비기三韓秘記』, 『진역유기震域留記』 등을 각각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본기는 모두 조선왕조 초 세조가 전국에 수서령收書令을 발동하여 민간에 감추어져 있던 고기들을 걷어들인 바로 그 신비의 책들이었다. 

위의 책들 가운데서 마지막의 『진역유기』란 사서는 18세기에 북애 노인이 저술한 『규원사화』의 대본이었다. 분명 그 책은 고려시대의 책이었다. history-04.jpg물론 지금은 실전失傳되어 없다. 모두 조선왕조에 이르러 관에서 불온사서不穩史書로 판정하여 일반인은 절대 볼 수 없고 단지 왕실도서관인 서운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사서였다. 이맥은 다행히 서운관에 드나들 수 있는 학자였다. 이맥은 연산군 때 왕에게 직언을 하여 유배되었다가 중종 때 다시 찬수관으로 등용되었기 때문에 이런 서운관의 비서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맥은 자신이 읽었던 비기秘記들과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이것을 『태백일사』로 엮어냈던 것이다. 

 

환국은 대륙에 있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환국은 환인의 나라였다. 환인의 나라는 나반의 후손인 천제天帝가 다스리는 나라로 그 위치는 천해 즉 북해가 있는 곳이라 한다. 「환국본기」도 환국의 위치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환국본기」는 『삼성밀기』를 인용하면서 환인의 나라는 파내류산 밑에 있었다고 하며 그 국토의 넓이가 어마어마하게 넓었다는 것이다. 사방이 5만리에 2만리였다고 하니 3천리 금수강산에 산다는 우리로서는 꿈같은 일이다. 부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이렇게 넓은 땅에 열 두 나라가 있었고, 이들을 모두 합해서 환국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운 옛날 이야기라 할 것이다. 

파내류산波奈留山 밑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었다. 천해天海 동쪽의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고 하였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리요 동서는 2만 여리였는데 합하여 말하기를 환국이라 했고 나누어 말하면 12국이 되었다. 즉 비리국卑離國,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또는 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또는 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또는 시위국, 통고사국이라 함), 수밀이국須密爾國이다. 천해는 지금의 북해이다. 

천해는 북해이고 북해는 지금의 바이칼호로 추정됨으로 파내류산이란 파밀고원이나 천산산맥 일대가 아니었나 추정된다. 어느 민족의 경우이건 그 원주지는 현주지와 다르다. 유럽의 여러 민족의 원주지는 중동이라 한다. 또 인류의 원주지는 아프리카 중부였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민족의 원주지가 현주지와 다르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 민족의 원주지가 그렇게도 먼 곳인가 의심할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의 고향은 한반도가 아니고 지금의 중국 땅 특히 양자강 이북의 땅을 모두 포함한 넓은 지역이었다. 그런데 그 뒤 동으로 이동하여 만주 땅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이동과정을 「환국본기」는 "환국의 동쪽에 또 하나의 작은 나라가 있었으니 곧 개마국蓋馬國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개마국은 개마대령(고원)에 있었다고 하는데 일명 웅심국熊心國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개마국은 일명 웅심국이라 하였으니 북개마대령北蓋馬大嶺의 북쪽에 있었으며 구다국으로부터 2백 리 거리였다. 구다국은 북개마대령 서쪽에 있었던 나라이다. 월지국은 그 북쪽 500리에 있었고 구다국은 본래 마늘과 쑥을 산출하였다. 쑥을 다려서 냉을 치료하였고 마늘은 구워 먹어서 재앙을 다스렸다. 

북개마대령의 북쪽이란 백두산의 북쪽 즉 만주 일대를 말한다. 지금의 중국 동북삼성을 말한다. 즉 백두산 북쪽인 지금의 만주 땅에 개마국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주변에 구다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이 개마국까지가 모두 환인의 나라 환국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압록강 중류 북쪽에 고구려의 고도 집안集安이 있고 거기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 또 집안의 북쪽에 통화通化라는 도시가 있고 통화와 집안 사이에 환인桓仁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집안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일상어 "집안家內 일이야" 할 때의 집안이며 환인은 글자 그대로 환인을 말한다. "지명은 역사보다 오래간다"는 말이 있다. 환인을 기리면서 고구려인들이 환인이란 지명을 붙인 것인데 그 역사는 잊혀지고 지명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다. 

 

환국은 지상천국이었다

그러면 환인의 나라, 환국은 어떤 나라였는가. 
한마디로 지상천국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람은 지상천국을 좋아한다고들 한다. 저승보다 이승에서 잘 살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환국은 바로 그런 나라였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환인이 하늘에 머물지 않고 직접 지상에 내려와 무리를 감독(監群)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조대기』에 기록한 말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처럼 환인이 아들 환웅을 지상에 보내고 자신은 하늘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옛적에 환인이 계셨으니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천산天山에 사시면서 천신天神에 제사 지내고 백성에겐 수명을 정(定命)해 주시고 모든 일을 두루 다 다스려 주셨으니(攝治), 사람들이 들에 있어도 벌레에 물리는 일이 없었고 집단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서로 원한을 품거나 거역하는 일(怨逆之患)이 없었다. 

이와 같이 『조대기』와 『삼국유사』는 서로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불교신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주장한 것이고, 「환국본기」를 쓴 이는 우리 민족고유신앙에 의거하여 기술했기 때문에 내용상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되었건 환인은 지상에 내려와서 지상천국을 건설하였다. 가장 한국적인 발상이었다. 환국은 그야말로 유토피아 즉 지상천국이었다. 마르크스의 원시공산주의사회와 같다고나 할까…. 물론 지금은 그런 사회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학자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러한 지상천국이 있었다고 믿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전통인 것이다. 

서로 친하고 멀다 하여 차별을 두지 않았고(親疎無別) 아래 위가 없고(上下無等) 남녀가 평등(男女平權)하고 노소가 서로 나누어 일하니(老少分役), 당시에는 비록 법이나 호령이 없다 하더라도 저절로 화락하고 모든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졌다. 모든 사람들에게 병이 없고 원한이 풀어지고 위험이 없고 약한 자가 구제를 받았으니 한 사람도 소외당하여 원한을 품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며 병이 없고 원한이 없으니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환桓이라 했고 서로 님任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스스로 호를 환桓이라 부르고 감군監群을 인仁이라 불렀다. 인仁이란 곧 님이란 말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님'이란, 한자의 '인仁'이란 말의 뿌리라 하니 반가운 일이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한용운은 님을 나라 즉 한국이라 해석했다. 일제 때는 한국이란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신 님이란 말을 쓴 것이다. 그리고 또 환이란 말을 흔히 벼슬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후대에 가서 그렇게 된 일이요 본시 환국 시대에는 모두 자기를 환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자처하였다는 것이다. 무궁화도 본래는 환화桓花라하였다고 하는데 이 또한 님의 꽃이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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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제인하고 광명제인하라

환이란 말이 '나'란 말에서 '벼슬'이름으로 변한 것은 신시시대나 단군시대 같은 훨씬 후대의 일이었다. 왜 환이란 말이 후대에 이르러 벼슬 이름으로 변했는가. 후세에 가면 사람들이 모두 타락하여 환국시대 처럼 착하지 않고 점점 악인으로 변해 갔기 때문이다. 환국시대에는, 

홍익제인弘益濟人하고 광명이세光明理世하는 것이 곧 임任이요, 인仁이다. 그러므로 오가의 벼슬아치들은 사무를 보는데 있어 정곡正鵠을 택하였고 그럼으로써 모든 백성은 대동귀일大同歸一하였다. 

여기서 홍익제인이란 곧 홍익인간이란 말과 같은 뜻이고 광명이세란 말도 이화세계란 뜻과 같다. 그런데 이 환이란 말의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매우 심오한 뜻을 갖고 있다. 

환국(본기)의 주桓國注에 말하기를 "환은 전일全一이란 뜻이오 광명이란 뜻이다. 전일은 삼신의 지능을 말하며 광명은 삼신의 실덕實德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환은 우주만물이 생성되기 이전부터 있었다"고 하였다. 

전일이란 모두가 하나란 뜻이다. 완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광명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일과 광명의 근원은 모두 삼신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며 우주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에 있었던 것, 즉 가장 본원적인 진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근원적인 진리가 우리 민족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좬조대기좭에 말하기를, 

우리의 옛 풍속에 광명을 숭상하여 태양을 신이라 하였으며 하늘을 조상이라고 하였다. 만방의 백성이 그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매일 아침으로 하늘에 경배하여 항상 의식을 지냈다. 

우리 조상들은 하나 같이 하늘을 믿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의 조상이 모두 하느님의 후손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학자들은 천손사상天孫思想이라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해와 달에 절을 하였던 것이다. 

태양은 광명이 모인 곳이며 삼신이 거처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빛을 얻기 위해 아침에 동산에 올라 뜨는 해에 절을 하고 저녁이 되면 일제히 서쪽 냇가에서 돋는 달에 절을 하였다. 

정동진을 연상케 하는 이 말은 우리가 특히 정월 초하루 해돋이를 구경하고 그럼으로써 한 해의 행운을 빈다. 이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바로 환국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을 가르친 분이 환인이었던 것이다. 환인은 누구보다도 먼저 스스로 이것을 깨달아 오훈 오사의 원리를 가르쳤던 것이다. 

환인은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오곡을 만들어 기르고 오훈을 해설하여 오사를 주관하였으므로 오가의 무리가 이를 쫓아 지선수행至善修行하고 개심광명開心光明하고 작사길상作事吉祥하고 주세쾌락住世快樂하게 하였다. 환인은 높고 높은 하늘에 계시어 오직 뜻이 간절하므로 백도百道가 다 스스로 화평하니 구환九桓의 백성이 모두 하나로 돌아왔다. 

그러면 '오가'란 누구인가. 환국에서 벼슬아치에 해당하는 지도자들을 말한다. 요즘의 공무원 또는 공직자를 말한다. 요즘의 공직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대통령 장·차관 그리고 검사·판사·국회의원 등등이다. 이들은 환국시대로 따지자면 오가였다. 오가는 요즘의 공직자와는 달리 모두 공정하여 사무를 보는데 어김이 없었다. 그러니 환국시대에는 벼슬아치들이 일을 부당하게 처리하거나 부정행위를 하는 일이 절대 없었다. 공직자들에게 부정부패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이 대동귀일大同歸一, 즉 대동단결하였던 것이다. 


환국에는 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후대에 삼한三韓이란 말이 나오는데 삼한의 '한'은 처음부터 나라 이름이 아니라 벼슬아치의 명칭이 '한'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을 일명 '한'이라 한다. 환국시대에 오가라는 벼슬아치가 있긴 있었으나 그들만 '한'이라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한'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을 '아무 아무개 님'이라 하듯이 한(환, 인, 님)은 상대를 높여 부르는 존칭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마치 요즘 사람들이 '저 분', '이 분'하듯이 환은 분과 같은 존칭으로 쓰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상대를 높여 '양반', '대감'하던 것과 같았다. 

이렇게 환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환'이요 '한'이요 '님'이었으니 단 한 사람도 나쁜 사람 즉 나쁜 '놈'이 없었다. 요즘에는 님이 적고 놈만 늘어났다. 님이 20%이면 놈이 80%라 해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을 근거로 하느냐 하면 보통 일반백성이 80%요 공직자가 20%라고 한다. 일반백성 80%가 모두 썩어도 공직자 20%가 청렴하면 나라는 건전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귀중한 20%가 썩었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우리는 1910년 일제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하였다. 그리고 숱한 고난을 겪었다. 망국의 유경험자다. 그런데 또다시 썩어가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은 양심건국良心建國이란 휘호를 남기셨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양심은 어디로 가고 사심邪心만 남아 제2의 건국은 고사하고 제2의 망국을 우려케 하는가! 

우리 민족의 첫 장이었던 환국에서는 어떠하였는가! 모두가 정직하고 다정하여 언제나 기쁨의 환성이 산울림처럼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환국은 그런 행복한 나라였으므로 모든 백성들이 만장일치로 환인桓仁을 임금 즉 우두머리로 추대하였다. 좬조대기좭에 보면 이 때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대개 백성이 살아가는 법은 무비無備면 유환有患하고 유비면 무환함으로 반드시 미리 자급自給하여 방비하고 능히 착한 무리가 되도록 다스림으로 만리萬里가 동성同聲으로 서로 말하지 않아도 절로 감화하여 행하였다. 이때에 만방의 백성이 기약도 없이 (환국으로) 모여든 자가 수만 명이나 되었다. 무리가 스스로 환무環舞하고 인하여 환인을 추대하여 위로는 환화桓花가 피고 아래로는 적석積石이 깔리어 그 단 위에 앉아 절을 받았다. 이 때 온 나라에 산호성山呼聲이 넘쳐흘렀다. 귀화하여 오는 자가 시장을 이루는 듯 하였다. 이분이 인간 최초의 두조頭祖가 된다. 

얼마나 즐겁고 기뻤던가. 마치 8.15 해방을 맞은 때와 같이 환인이 등극했던 것이다. 만리가 동성同聲하고 무리가 환무環舞하고 온 나라에 산울림하듯 기쁨을 함께 하였다고 하니 꿈같은 이야기다. 환인이 환화 밑에서 절을 받았다고 했는데 환화란 무궁화를 말한다. 

환인이 임금이 되니 사람들이 근면하였고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환인은 또 도道를 닦아 무병장수하였다. 

무리는 부유하고 풍성하였다. 처음 환인께서 천산에 사시면서 도를 얻으시어(得道) 오래 사시고 몸을 다스려 병이 없었다. 하늘을 대신하여 교화를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을 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근면하여 일하게 하여 기아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환국본기」에는 홍익인간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언급이 보인다. 즉 환국에 <오훈五訓>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신시시대에 가서는 이 오훈이 <오사五事>로 변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조대기」에 말하기를, 

환국에는 오훈이 있고 신시에는 오사가 있었다. 

고 한다. 
먼저 오훈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오훈이란 무엇인가 하면, 

오훈은 
첫째, 성실하고 믿음으로 거짓이 없어야 한다(誠信不僞) 
둘째, 공경 근면함으로서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敬謹不怠) 
셋째, 부모에게 효로써 순종하며 어김이 없어야 한다(孝順不違) 
넷째, 염치와 의리가 있어 음란치 말아야 한다 (廉義不淫) 
다섯째, 겸손하고 화목하여 싸우지 말아야 한다(謙和不鬪) 는 것이다. 

어찌 보면 환인은 오늘의 현대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르침을 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정반대다. 오훈은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첫째, 현대인은 성실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거짓말도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이 특히 그렇다. 정치인뿐인가! 상인은 물론 농민까지도 소비자를 속이는데 너무 익숙하다. 학생이 선생을 불신하고 선생이 교장을 불신하여 붉은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오니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란 말인가! 

어느 전임 대통령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자신의 청렴을 국민들에게 맹세하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아들이 부정하여 거금을 챙기고 있었다. 오늘의 부정부패는 1백년 전의 동학농민운동 때보다 더 심하다. 조병갑의 부정은 새 발의 피였다. 

둘째, 요즘 젊은 사람들은 특히 윗사람이나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돈을 벌려고 도둑질을 하거나 남을 속이려 들고 있다. 

셋째, 요즘에 불효가 일반화되어 늙은 부모를 양로원에 버리거나 아주 거리에 버리는 사람이 있다. 현대판 고려장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꾼들은 공공연히 대한민국은 복지국가라 허언한다. 

넷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의리와 염치를 헌신 짝 버리듯 한다. 안중근 의사는 이利를 보거든 의義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사람은 이 나라에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섯째, 겸손하다거나 화목하다는 것은 모두 겉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지 진실로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몸짓은 아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바보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현대인은 싸움을 좋아하고 싸움을 구경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이긴 자에게 갈채를 보내고 패자를 경멸한다. 축구경기를 비롯하여 모든 경기가 그러하다. 미국은 2천 개, 러시아가 1천 개의 원폭을 가지고 있다가 최근 1천7백 개로 줄인다고 자랑하고 있다. 이러니 어찌 싸움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러면 다시 신시시대로 돌아가자. 신시시대의 오사五事란 무엇인가. 오사는 오훈과 달라서 벼슬아치의 소관업무를 말하는 것이다.history-06.jpg 


오사란 
첫째, 우가牛加는 농사를 주관하고, 둘째, 마가馬加는 목숨을 주관하고, 셋째, 구가狗加는 형벌을 주관하고, 넷째, 저가猪加는 병을 주관하며, 다섯째, 양가羊加(또는 계가鷄加)는 선악을 주관하였다. 

그런데 이들 관리들은 절대 부정하지 않고 청렴결백하며 부지런하여 조금도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 

『조대기』에 말하기를 오가五加의 무리는 모두 어려움을 참고 부지런하여 잘 배워서 마음의 빛을 얻어 세상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러니 구환九桓의 백성이 모두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 다시 환국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글쓴이 박성수 씨는 서울대 사대 역사학과를 거쳐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각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후학들을 길렀으며,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을 역임한 후 한국정신문화원 편집부장으로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을 주도하였다. 아울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서 중국 속의 독립운동사적지 및 백두산, 발해사적지 등을 탐방하였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로서 정년 퇴임한 이후에도 왕성한 연구 및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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