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이야기풍류를 즐기며 살아온 우리 민족 (국악칼럼)

작성자: 상생동이님    작성일시: 작성일2018-10-15 13:52:31    조회: 28회    댓글: 0

 

풍류를 즐기며 살아온 우리 민족 (국악칼럼)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풍류(風流)의 전통

 

국악을 아는 사람들 간에는 “풍류를 한다.”고 하면 영산회상을 연주하며 노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거문고를 비롯해서 대금․해금․세피리․단소․양금․가야금․장구 등으로 편성되는 악기를 가지고 상영산부터 중영산․세령산․가락덜이․상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까지 한 바탕 연주하는 것을 줄풍류라하고 그런 음악하는 것을 ‘풍류한다’고 일러 왔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에 따라서 연주하는 곡목이 추가되기도 하고 가락이나 분장법이 다르긴 하다.

 

남도지방에서 연주되는 향제 줄풍류에는 밑도드리가 중간에 들어가고 뒷풍류라고 하는 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우조가락도드리와 굿거리가 들어가서 규모도 커지고 더 흥겹게 연주한다. 풍류를 하며 노는 모임에서는 시조나 가곡을 부르기도 하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춤을 출 수도 있다. 그런데 춤을 출 때에는 반주하는 음악이 줄풍류가 아니고 삼현육각 편성의 대풍류를 연주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전승되는 풍류의 음악에는 현악영산회상(重光之曲)을 거문고 중심의 세악편성으로 연주하는 줄풍류와 관악영산회상(表正萬方之曲)을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대풍류가 있다. 또 시조나 가곡도 역시 풍류의 중요한 레퍼토리이다.

 

 

풍류의 근원  


풍류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그 근거는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다다른다. 최치원은 國有玄妙之道하니 曰風流라고 하면서 풍류라는 현묘한 도를 儒․佛․道 三敎의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최치원이 파악한 삼교의 내용이란 유교는 충성과 효도를 실천하며 接化群生하는 가르침이요 불교는 악행을 막고 선행을 힘써 행하여 복 받도록 하는 가르침이며 도교는 無爲에 處하여 不言을 가르치는 道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三敎의 내용이 풍류라는 현묘한 도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현묘한 도가 있는데 그것의 명칭이 풍류라는 것이다. 풍류의 정의나 내용은 三敎(儒․불․道)의 핵심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풍류를 행하던 무리가 바로 풍월도(風月徒) 또는 풍류도(風流徒)라 일컫던 화랑도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랑이라는 화랑이 죽어서 비문을 지으면서 최치원이 풍류의 근원에 대하여 설명을 하게 된 것이다. 화랑들이 지켰던 세속오계에 보면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유교적인 것이 있고 살생유택이라는 불교적인 것도 있다. 또 명산 대천을 찾아다니며 심신을 수련했다고 하는데 자연을 가까이 하며 천지의 기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은 도교의 무위자연하며 양생하는 사상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미루어 보면 풍류는 우리나라의 현묘한 道인데 이것을 실천하던 무리가 화랑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풍류는 하나의 사상으로서 또는 하나의 道로서 우리문화의 근원이 되는 무엇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것이다. 유동식도 한국사상 또는 한국종교의 근원을 풍류로 본 적이 있고 송항룡도 풍류는 최치원이 파악한 한국의 고유사상이라고 한 바 있다.

 

천인합일의 망아의 경지 

 

이러한 풍류가 후세에는 자연을 가까이 하고 음악을 즐기며 멋스럽게 사는 하나의 도로 전승되게 된다. 좋은 술을 빚어 놓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한 판 풍류판을 벌인다고 하면 음악은 물론이요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고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그래서 일상의 자기를 떠나 천인합일(天人合一)하는 망아(忘我)의 경지를 맛보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차(茶)와 고려청자 같은 것이 발달하고 조선시대에 정자(亭子)가 많이 지어지며 율각(律閣)이나 율계(律契)가 유행한 것도 다 풍류가 생활화 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풍류남아 하면 멋을 알고 돈을 잘 쓰고 예술도 아는 그런 남자를 연상하게 되어 있고 풍류객하면 풍류음악을 잘하는 음악애호가 쯤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풍류라는 말이 음악에 남아 전승되고 있기 때문에 풍류의 의미도 음악을 통해서 재조명해야 할 형편이다. 우리의 고유한 사상이 신라시대에는 화랑도 같은 제도를 낳았고 고려와 조선을 통하여서는 멋스런 생활을 발달시켰었는데 지금은 음악으로 전승되고 있다는 말이다.

 

금(琴)은 금야(禁也)라 금지사심야(禁之邪心也)라는 말이 있다. 거문고를 하는 것은 사특한 마음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내용인데 옛날 선비들이 남긴 거문고 악보에 자주 눈에 띄는 구절이다. 선비들이라고 하여 하루종일 계속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잠시 쉴 때에는 거문고를 끌어 당겨 “슬기둥 뜰- ”하며 풍류음악을 한다는 것이다. 그냥 쉬면 사특한 마음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줄풍류의 음악들은 그런 정신이 발달시킨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하되 마음속에 일어나기 쉬운 욕심스러운 것을 다 덜어낼 수 있도록 음악에서도 덜어낼 수 있는 음은 다 덜어내고 기교가 아닌 마음으로 음악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늘이 준 나의 가능성을 되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도를 음악을 통하여 실천해 보는 것이다. 이복기성(以復其性)이라던지 천인합일(天人合一)등의 용어가 풍류음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일에 잡착하여 악착같이 사는 사람은 풍류를 알 수 없게 되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삶에 찌든 현대인에게서는 풍류를 찾아보기 어렵다.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기업인이나 출세욕에 사로잡힌 관료들은 풍류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리사회는 한 동안 그렇게 살아 왔다. 그런데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다시 풍류스러운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동차로 온 가족이 교외로 나들이를 한다든지 보다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을 짓는 것 등은 풍류의 정신이 나타나고 있는 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일상적인 생활 틀에 박힌 일과를 벗어나서 자유와 자연과 새로운 생활체험을 모색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 참모습을 생각해 보고 자기다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 속에 잠재해 있던 풍류의 욕구가 서서히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음악을 접목시켜야 참 풍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고 더 멋스러운 생활전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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