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세계오대산으로 출가한 청나라 3대 순치황제 이야기

작성자: 상생동이님    작성일시: 작성일2018-05-16 21:15:21    조회: 515회    댓글: 0

 

오대산으로 출가한 청나라 3대 순치황제 이야기

 

청나라 3대 황제인 순치제의 어진이다.여진족 출신 누루하치가 세운 후금은 중원정벌을 앞두고 나라 이름을 대청으로 바꾸고 민족 이름을 만주족으로 바꾼다.

 

명나라의 명은 해와 달이니 오행상 불이다.불을 이기는 것이 물이니 백두산 천지의 푸른 물을 상징하는 청나라로 바꾼다.여진족을 만주족으로 바꾼것은 한족을 정벌하고 지배하기 위해서이다.

 

한족들은 여진족의 추장 아골타가 세운 금나라의 침략으로 송나라의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휘종.흠종황제와 왕자 귀족등 3000여명이 만주로 끌려간 치욕적인 사건을 잊을수 없기 때문이다.

 

여진족의 조상은 신라 경순왕의 손자인 김함보스님이다.장군이면서 승려였던 김함보는 신라가 고려에 귀속되는 것을 반대하여 만주로 가서 여진족의 추장이 되었다.김함보의 8대 후손이 아골타장군이며 신라김씨가 세운 나라라고 국호를 금나라로 지었다.

 

문수보살의 인도발음이 만주슈리이다.만주족이란 문수보살처럼 지혜롭고 용맹하다는 뜻이며 만주땅 또한 문수보살의 법신이 머무는 성지라는 뜻이다.만주족의 풍습중 체두변발은 앞머리는 삭발하고 뒷머리는 댕기를 땋아 길게 늘어 뜨린다.청나라 황제들은 모자를 벗으면 모두 스님상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이 신라에서온 김함보 스님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기들은 반승반속.반은 중이고 반은 스님이란 입장을 취해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고려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불렀다.조선은 명나라의 한족을 받들면서 여진족을 오랑캐로 멸시하였다.

 

어느 절에 덕높은 노스님 한분이 계셨다.어느날 상좌들과 차담을 나누는데 한 제자가 물었다.큰 스님께서는 언제 옷벗을 겁니까? 언제 육신을 벗어나 열반에 들것인지를 물은 것이다.그때 스님은 큰 법당 뒷산의 바위가 무너질때 옷을 벗을란다.하고는 먹을 갈게 하였다.

 

붓을 들어 곱상한 사람얼굴을 그린후에 눈동자는 남겨두며 말하였다.삼십년 후에 이 그림을 걸개로 하여 중원천하를 돌아다니며 , 자기 영을 찾으시오 ,하고 소리를 치고 다니면 내가 나타나 눈동자를 그려줄 것이다.ᆢ

 

하고는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단정히 입고 제자들에게 염불을 하게 하였다.고요히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듣던 스님은 고요히 입적하셨다. 그순간 벼락이 치듯이 우르릉 쾅쾅 소리를 내며 뒷산 바위가 무너져 내렸다.

 

삼십년 후에 청나라는 오삼계의 도움을 받아 자금성의 주인이 되었다.중원을 정벌하고 자금성에서 즉위식을 올린 첫번째 황제가 바로 순치제이다.어느날 성밖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ᆢ

 

자기 영을 찾으시오.

자기 영을 찾으시오.

 

꿈속에서 소리를 듣는것 같았다.신하를 보내 그 스님을 궁안으로 불렀다.손에 들고 있는 그림을 보고는 붓을 들어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눈동자를 그려 넣으니 바로 황제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 스님은 황제께 큰 절을 올리고 말했다.삼십년만에 스승님을 뵙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순치는 홀연히 자신의 전생을 깨달았다. 

 

여덟살된 자기 아들 현엽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으로 출가하였다.

출가할때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순치의 아들 현엽은 8살에 왕위에 올라 69세까지 통치하였다.그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위를 지켰고 강희.옹정.건륭의 문화전성기와 태평성대를 열었다. 그 이름이 강희황제이다. 

 

天下叢林飯似山(천하총림반사산)       곳곳이 총림이요, 쌓인 것이 밥이거늘

鉢盂到處任君餐(발우도처임군찬)    대장부 어디 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

黃金白璧非爲貴(황금백벽비위귀)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 알지 마소

惟有袈裟被最難(유유가사피최난)    가사 옷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려워라.

朕乃大地山河主(짐내대지산하주)        내 비록 산하대지의 주인이련만

憂國憂民事轉煩(우국우민사전번)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더욱 시끄러워

百年三萬六千日(백년삼만육천일)           백 년, 삼만육천 날이

不及僧家半日閒(불급승가반일한)     승가에 반나절 한가함에 못 미치네.

悔恨當初一念差(회한당초일념차)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으로

黃袍換却紫袈裟(황포환각자가사)       가사 장삼 벗고 곤룡포를 입게 됐네.

我本西方一衲子(아본서방일납자)          내 본디 서천축(西天竺) 스님인데

緣何流落帝王家(연하류락제왕가)      어찌 된 인연으로 제왕가(帝王家)에 떨어졌나.

未生之前誰是我(미생지전수시아)         태어나기 전 그 무엇이 내 몸이며

我生之後我是誰(아생지후아시수)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뉘련가.

長大成人纔是我(장대성인재시아)      자라나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나라더니

合眼朦朧又是誰(합안몽룡우시수)         눈 한 번 감은 뒤 내가 또한 뉘런가.  

百年世事三更夢(백년세사삼경몽)       백 년의 세상일은 하룻밤의 꿈속이요

萬里江山一局碁(만리강산일국기)       만 리의 이 강산은 한판 바둑 노름이라.

禹疏九州湯伐桀(우소구주탕벌걸)      우임금이 구주를 나누었으나 탕임금 걸을 치며

秦呑六國漢登基(진탄육국한등기)       진시황 육 국을 차지하였으나 한 고조 새기틀을 닦았네.

兒孫自有兒孫福(아손자유아손복)        자손들은 저 스스로 제 살 복을 타고났으니 

不爲兒孫作馬牛(불위아손작마우)        자손을 위한다고 마소 노릇 그만 하소. 

古來多少英雄漢(고래다소영웅한)           예로부터 많고 적은 영웅들이 

南北東西臥土泥(남북동서와토니)        동서남북 사방에 한 줌 흙으로 누워 있네.

來時歡喜去時悲(내시환희거시비)      올 적에는 기뻐하고 갈 적에는 슬퍼하니

空在人間走一回(공재인간주일회)      헛되이 인간세에 와서 윤회하고 가는도다. 

不如不來亦不去(불여불래역불거)      애당초 오지 않았으면 갈 일이 없으리니

也無歡喜也無悲(야무환희야무비)      기쁨이 없었는데 슬픔인들 있을 쏜가.

每日淸閑自己知(매일청한자기지)         나날이 한가로움 나 스스로 알 것이라. 

紅塵世界苦相離(흥진세계고상리)      이 풍진 세상 속에 온갖 고통 여일세라. 

口中吃的淸和味(구중흘적청화미)         먹는 것은 맑고 담백한 음식이요

身上願被白衲衣(신상원피백납의)      입는 것은 누더기 한 벌 원할 뿐이로다.

四海五湖爲上客(사해오호위상객)       사해와 오호에 노니는 자유로운 객이 되어

逍遙佛殿任君棲(소요불전임군서)       부처님 도량 안에 마음대로 노닐세라. 

莫道出家容易得(막도출가용이득)       세속을 떠나는 일, 하기 쉽다 말을 마소.

昔年累代重根基(석년루대중근기)       숙세에 쌓아 놓은 선근(善根) 없이 아니 되네. 

十八年來不自由(십팔년래부자유)       지난 18년간 자유라곤 없었으니

山河大戰幾時休(산하대전기시휴)       산하대전으로 어찌 쉴 틈이 있었겠는가.    

我今撤手歸山去(아금철수귀산거)       내 이제 손을 털고 산속으로 돌아가니

那管千愁與萬愁(나관천수여만수)           천만 가지 근심 걱정, 내 아랑곳할 일 없네.


 

 

정사에서는 순치황제가 24세에 천연두로 붕어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당시에는 여름도 아니었고 천연두가 유행하지도 않았다.

 

청대황제들의 무덤은 군벌들에 의해서 모두 도굴되고 파괴되었지만 순치황제의 릉은 하나도 훼손되지 않았다.

 

그의 무덤에는 신발과 부채만 들어있고 텅비어 있다는 기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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