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수학자이지만 반면 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은 신비주의 수학자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을 금지하여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제자와 다른 수학자들의 저술에 의해 그의 업적이 알려지게 되었지요.

피타고라스는 그리스의 에게해 사모스섬에서 태어나 상인이였던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고향을 떠나 20여 년간 돌아다니며 수학, 기하학 등의 여러 학문을 공부하다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하여 수도원의 성격을 띈 공동체를 만들었고 이들을 ‘피타고라스 학파’라 불렀습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피타고라스를 신성시 하여 연구한 결과를 피타고라스의 업적으로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피타고라스의 업적이 모두 피타고라스 자신이 직접 연구한 것인지 제자들의 연구 결과인지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로 보고 세상의 모든 사물을 수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자연수 1, 2, 3, 4를 점으로 표현하여 다음과 같이 삼각형 모양으로 나열하고 이 규칙에서 만들어지는 수 1, 3, 6, 10등의 수를 ,‘삼각수’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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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신을 제외한 양의 약수들의 합으로 표현되는 양의 정수를 ‘완전수’라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숫자 6은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으므로 완전수가 됩니다. ( 6의 약수는 1, 2, 3, 6이다. 6을 제외한 약수의  1+2+3=6이 된다.)

위의 삼각수, 완전수 이외에 사각수, 과잉수, 부족수, 친화수 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수를 분류하였습니다.

피타고라스 하면 ‘피타고라스의 정의’를 가장 먼저 생각할 텐데요.

피타고라스 정의는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과 같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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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정리는 사실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에서 미리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고 중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타고라스의 이름을 따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라 불리어지는 이유는 피타고라스 학파가 식의 형태로 완성하고 그 증명을 기록으로 남긴 최초의 학파이기 때문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버금가는 피타고라스의 유명한 업적이 있습니다. 바로 ‘황금비’인데요. 이 황금비는 정오각형의 각 꼭지점에서 대각선을 그으면 별이 생기는 데 이때 정오각형별에서 짧은 변과 긴 변의 길이의 비가 1  : 1.618이 되고 이를 가장 균형적이고 이상적인 비율이라하여 황금비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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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금비는 이후 간단한 물건이나 신전을 짓는 데까지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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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는 왜 만물이 수라고 했을까? 

윤회 사상에 의하면 영혼은 몸을 바꾸어가며 떠돈다. 혼이 윤회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혼이 정화되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혼이 정화될까? 혼의 정화는 우주적 질서에 동화됨으로써 가능하다. 혼의 정화를 위해서는 먼저 우주적 질서를 알아야 한다. 

우주적 질서, 너는 무엇이냐? 

하루는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망치들이 내는 소리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주의 깊게 망치 작업을 관찰했다. 그는 망치들의 무게에 비밀이 숨어 있음을 간파했다. 그는 망치들의 무게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피타고라스는 망치 무게들의 비례관계에 주목했다. ‘우주의 조화는 수의 비례에 있어!’ 그는 마침내 한 옥타브의 여덟 음계에 들어 있는 수적 비례관계를 밝힌다. 피타고라스는 화성학의 원조였던 셈이다. 

그는 나아가 음의 조화처럼 우주적 질서에도 이 수적 비례관계가 내장되어 있다고 보았다. 피타고라스는 마음을 정화하는 리듬과 멜로디를 부지런히 찾았다. 피타고라스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음악을 들었다. 그들에게 음악은 영혼을 정화하는 방편이었다. 

우주를 처음으로 코스모스(cosmos)라고 부른 사람 역시 피타고라스였다. 피타고라스는 별들의 배열과 움직임에도 수적 비례가 성립함을 탐구했다. 우주는 순수한 수의 세계였다. 오직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만 지각될 수 있는 수의 세계 말이다. 피타고라스는 선포한다. 세계는 수다.  

수학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를 잇는 다리다. 수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학문일 뿐만 아니라 자연 너머에 있는 신적 존재와 소통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수학을 통해 불변의 실재에 대해 숙고했다. 그렇게 수학에 집중하면 마음은 평온해지고 정화되었다.  

피타고라스는 인간의 지식을 예찬했다. 물질은 유한하나 지식은 무한하다. 물질적 자산은 남에게 주면 줄어들지만, 지적 자산은 남에게 주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지식은 남에게 줄수록 더 명확해지고 풍부해진다. 지식은 영원하다. 지식은 이웃을 배려하고 인류에게 도움을 준다. 

코페르니쿠스가 출현하기 이전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피타고라스학파의 사람들이다. ‘태양은 우주의 불이며,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생기고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좋으랴. 피타고라스학파의 태양중심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에 밀려 이후 2000년 동안 잊힌다. 16세기가 되어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하고 나서야 태양이 다시 우주의 중심이 된다. 근대 과학혁명의 배후에는 피타고라스가 있었다. 

서양 과학 문명의 원조는 피타고라스였다. 각도의 크기에 따른 직각삼각형의 두 변의 관계를 말해주는 ‘사인(sine)’과 ‘코사인(cosine)’ 역시 피타고라스 정리에 토대한다. 원의 방정식을 ‘x^2+y^2=r^2’로 표기할 수 있는 것도 피타고라스 정리 덕분이다.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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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관련 일화 

"....One day, during a trip from Sybaris to Crotona, by the sea-shore, he happened to meet some fishermen engaged in drawing up from the deep their heavily-laden fish-nets. He told them he knew the exact number of the fish they had caught. The surprised fishermen declared that if he was right they would do anything he said. He then ordered them, after counting the fish accurately, to return them alive to the sea, and what is more wonderful, while he stood on the shore, not one of them died, though they had remained out of their natural element quite a little while. Pythagoras then paid the fisher-men the price of their fish, and departed for Crotona...." --- Iamblicus, {The Life of Pythagoras} 

.... 시바리스에서 크로토나로 여행하던 어느날, 피타고라스는 해변에서 그물에 가득 잡힌 물고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어부들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는 어부들에게 그들이 잡은 물고기가 몇 마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놀란 어부들은 만약 그 말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피타고라스가 시키는 뭐든지 하겠노라고 답했다. 피타고라스는 일단 물고기 수를 정확히 세고나서 다시 물고기를 산 채로 바다로 돌려보낼 것을 주문했다. 놀랍게도 물고기들은 한 동안 물 밖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물 가에 서 있는 동안 단 한마리도 죽지 않았다. 그런 후 피타고라스는 어부들에게 물고기 값을 지불하고 크로토나를 향해 떠났다. --- 얌블리코스, {피타고라스의 생애} / 번역: 최광민